정쟁에 밀린 '태풍 민생'

태풍 미탁에 삶의 터전 잃고 政爭에 두 번 우는 이재민들 영덕·울진 태풍 ‘미탁’에 쑥대밭 됐는데도 조국사태로 뒷전에 밀려 피해주민들, 보수·진보 광화문·서초동 집회 보며 “지금 이럴 때냐”

2019-10-09     박성조·김영호기자

 

 

영덕과 울진지역에 태풍 ‘미탁’이 할퀴고 간 상처가 너무나 깊고 크다.

지난해 태풍 ‘콩레이’ 때보다 더 심각한 피해가 발생해 주민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태풍이 휩쓸고 간 지난 주말인 4일부터 군장병, 자원봉사자들과 태풍피해지역 주민들이 5일째 복구에 나서고 있으나 복구율은 절반 수준에도 못미처 아직 정상을 되찾기에는 상당한 기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가 지난 8일까지 조사한 도내 태풍 피해액은 총 600억원(울진 257억, 영덕 188억원)이 넘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피해조사가 마무리되면 피해액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영덕과 울진지역에 대한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지정이 시급히 요구된다.

9일

이런 가운데 피해주민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조국 사태’로 보수와 진보로 쪼개진 정치권의 정쟁(政爭)싸움질이다. 연일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광장집회를 벌여 태풍피해지역의 참상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정치만 있고 태풍 피해지역의 민생(民生)은 없는 것이다.

진영

정부는 지난 6일 태풍 피해지역에 특별교부세 52억3000만원을 지원한다고 한 뒤 7일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영덕과 울진을 둘러보는 것으로 마치 할일 다했다는 식이다. 12명의 사망자를 낸 태풍 피해 지역에 대통령은 고사하고 총리도 태풍이 지나간뒤 3일이 지난 후에나 현장을 찾았다. 그나마 이철우 경북지사, 장경식 경북도의회 의장, 권영진 대구시장, 강석호 지역구 국회의원 등 TK지역 인사들만 피해현장을 찾아 동분서주하며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과 아픔을 나누었다.

태풍 피해주민 남위순(61·여·영덕군 병곡면 원황읍)씨는 “이번 태풍에 시금치 재배 비닐 하우스가 모두 물에 잠겨 올 농사를 망쳤다”면서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 그런데도 TV를 보면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만 부각시킬뿐 태풍피해지역의 실상은 너무 소홀히 다루는 것 같아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정부가 타 지역에 비해 너무 홀대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남씨는 이번 태풍에 송천교가 떨어져 나간 근처인 병곡면 원황읍에서 시금치 재배 비닐하우스 13개동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태풍피해로 시금치 생산(내년 2월까지 출하)을 하지못해 1억8000만~2억원의 피해를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장비가 물에 잠겨 못쓰게 됐고, 직원들의 급여까지 포함하면 최대 2억~3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울먹였다.

대형 산사태가 발생한 울진군 북면 소곡리 주민 30여명(20가구)은 삶의 터전을 잃고 40년전 삶으로 되돌아 갔다. 전기·수도가 끊겨 양초와 구호품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 태풍에 산사태와 급류로 마을전체가 물바다에 잠긴 병곡면 금곡1리 김명대(70)씨의 집은 밀려온 흙더미로 아수라장이 됐고 며칠째 흙을 퍼내고 있지만 완전복구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김영철(57)씨의 집 일부는 급류에 떠내려가 생활터전을 잃기도 했다. 이 마을 80여 가구 가운데 40여가구가 산사태 토사로 집안이 엉망이 됐다.

영덕군 병곡면 백석리도 마을 뒤쪽 7번국도와 나란히 공사중인 동해중부선 철도부지 경사면의 흙이 무너져 내리면서 60여가구을 덮쳤다. 주민들은 마을을 덮친 토사가 배수로와 하수로를 막아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영덕 강구시장 역시 지난해 콩레이 당시 시장 서편에 놓인 동해중부선 철도부지가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번 태풍에도 강구시장은 지난해와 똑같은 침수피해를 당해 상인들이 망연자실하고 있다.

한편 행안부는 지자체의 태풍피해 조사가 끝나는 이번주 중에 영덕·울진부터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