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자 때 법광사 꽃놀이도 가고… 좋았지요

김두식씨 포항 이야기 양조장 기술자였던 남편 26살에 만나 백년가약 부녀회장으로 활동하며 주민에 ‘공로상’도 받아 “청년들에 가족 우선으로 선하게 살라고 말하고파”

2019-10-10     경북도민일보

경주 양북에서 태어났어요!

김두식. 이름이 남자이름이잖아요, 7남매 중에 세 번째지요. 그 때는 아들을 선호하고 그랬잖아요.

남편은 경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다니다가 고모가 한약방 하는데 따라나와서 포항 동지중학교에 다녔어요. 그냥 길을 가다가 만났어요.

양조장 기술자로 정민이 아버지가 우리 동네로 왔어요. 그래서 만났죠. 첫인상은 보니까 저런 사람이 왔나 했는데, 그 사람이 저를 아주 좋아했어요. 그냥 보는 순간 제 얼굴이 빨개졌대요. 친구 집에 놀러 가는데 찾아 왔더라구요. 그래서 시간 좀 빌리자고 하대요. 그래서 제가 시간 빌리고 갚아 달라고 했지요. 그 때가 늦가을인데 늦게 까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이후 아마 제 나이 26살, 1971년도에 포항 동원예식장에서 결혼했죠.

신광양조장 안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지금은 폐업했지만, 양조장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남편은 술 만드는 탁주 기술자로 한 9년은 했다.

경주상고를 졸업해서 어떻게 그 기술을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그 후에 사우디에 운전하러 3년 갔다오기도 했다.

지난 2013년도 칠순을 지낸 남편이 뇌종양으로 돌아갔다.

첫 선을 보았을 때 남편에게 보여준 26살 때 사진, 16살 때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사진첩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솔밭에서 그네타고, 줄넘기하고, 숨바꼭질 하고, 좀 더 큰 아이들은 가마니치고 뜨개질도 하고 이웃사람들 옷 세탁해 주고 바느질 솜씨가 좋아서 수선해 주고 그랬다. 모든 게 어려운 시절에 바지와 저고리도 꿰매어주고, 신광에 명성사진관, 한일사진관에서 주로 사진을 부탁했다. 법광사 큰 묘 옆에서 1964년도 4월 28일에 찍은 사진이 가장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다.

자식자랑하면 팔불출이라 하는데 아들이 참 효자다. 항상 그렇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아들 박정민(72년생)이는 지가 알아서 결혼한다고 하고, 둘째 딸 정은이는 결혼을 했다.

첫째는 친구들끼리 재미있게 지내니 결혼할 생각을 안한다. “좋은사람 소개 좀 시켜주소. 그래도 지금까지는 참 효자시더,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 쭉 그렇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니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욕심이 없고 착해요. 그래도 지가 나가야 마음이 편치요.”

“어느 핸가 남편이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고, 고추 심으러 갔다가 설설 매는 기라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선린병원에 가가 MRI 찍으니까 서울 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산병원에 입원을 해서 수술을 받았죠. 뇌종양 수술을 했는데, 병원비가 감당이 안 되더라구요. 의사들끼리 협의해서 경북대학교병원으로 내려 왔지요. 결국은 대구에서 3년, 포항에서 2년 고생했죠. 촌사람이 서울 갔더니, 어딘줄 알아야 지요 뭘…”

“사람의 일생이 다하는 게 아쉽더만요! 제 포부가 배고픈 사람들 먹이고 싶은 것이 소망이니더. 제가 배가 고파보니 알겠더라구요. 저는 내 먹을라고 그렇게 안 합니더.”

동네 부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동네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주민들로부터 ‘공로상’까지 받았다. 동장이 많이 도와주고, 동민들도 많이 도와줬다.

동네 청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가정이 우선이니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라! 남들에게 선하게 대하고, 평생을 봉사하며 살라고….”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