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감독이 만드는 소리 없는 영화

2006-07-02     경북도민일보
 청각장애를 가진 20대 감독이 자신과 주변 농아인들의 경험을 담은 단편영화를 잇따라 내놓아 화제다.
 세 살 때 앓은 중이염으로 청각을 잃은 박재현 감독은 카메라로 세상과 소통한다. 지금껏 만든 영화만 6편.
 박 감독의 영화에는 소리도, 색도 없지만 다른 영화에는 없는 `수화’가 있다. 지금 시대에 흑백 무성영화라고 생각하면 지루하거나 아주 독특할 것 같지만 수화로 소통하는 박 감독의 영화 속에는 청각장애인들의 삶이 가감없이 녹아 있다.
 올 4월 서울 장애인권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어느 애비의 삶’은 지난해 세 식구의 생계를 꾸리다 벌금 70만원을 징수당해 목숨을 끊고 만 한 청각장애인 노점상의 사연을 화면으로 가져와 생계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절절한 심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개인적인 경험도 빠질 수 없다. 영화 보조출연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청각장애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면서 느낀 차별과 편견의 높은 벽을 세번째 영화 `소리없는 절규’로 표현했다.
 카메라로 세상을 보기까지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외로운 작업은 아니다. `천원 이야기’까지 지금껏 6편의 영화를 만들어 오면서 친구들과 `데프 미디어(Deaf Media)’라는 영상제작단을 꾸려 힘을 북돋웠다.
 2005년 봄 3명이 모여 영화동호회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15명에 가까운 어엿한 영상제작단으로 거듭났고 살아 있는 수화를 필름에 담아 진실한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목표를 일구고 있다.
 언제나 잊지 않는 것은 청각장애인이라는 `비주류’의 입장. 비장애인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을 영상에 담아 `차이’와 `차별’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소망이다.
 박 감독은 “영화는 청인(비장애인)과 농인(청각장애인)의 문화를 소통해주고 서로의 언어를 존중해주는 다리 같은 존재이고 서로의 문화 차이를 넘으려면 있는 그대로의 수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청인과 농인이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