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좀비·홍가이버? 다양한 별명 기분 좋죠”

정웅인, ‘99억의 여자’서 ‘찐 사이코패스’ 홍인표 열연 “너무 강한 악역 망설 이기도… 다양한 역할해 보고파”

2020-01-27     뉴스1
배우 정웅인은 KBS 2TV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 확신의 신 스틸러였다. 극에서 정서연(조여정 분)의 남편 홍인표로 등장한 그는 아내를 향한 삐뚤어진 애정, 광기 어린 집착을 보이며 갈등의 한 축을 담당했다. ‘찐 사이코패스’ 같은 그의 연기가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홍인표가 등장하는 신은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그는 마지막까지 ‘99억의 여자’에 긴장감을 주며 제 몫을 훌륭히 해냈다.

- ‘99억의 여자’가 종영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첫 대본 리딩을 할 때 ‘지상파를 살려보겠습니다’라고 호기롭게 말했는데, 그 사이 ‘동백꽃 필 무렵’이 그렇게 잘될 줄 몰랐다. 우리 드라마도 바통을 이어받아 좋은 결과를 낸 거 같아 뿌듯하다. 한 스태프 분이 ‘웅인씨 그 인사 덕분에 우리 드라마도 잘된 거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또 좋은 배우들을 만나서 감사하다. 감독님, 작가님도 너무 고생 많으셨다.

- 극 중 홍인표는 정서연을 학대하는 ‘폭력 남편’이다. 호감일 수 없는 캐릭터기에 출연 전에 고민하진 않았나.

처음엔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 너무 악역이라 와이프가 많이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작품을 하게 됐는데, (홍인표의 행동이) 자극적이긴 해서 가족들은 드라마를 못 보게 했다. 그랬더니 딸들과 아내가 밖에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연기 좀 적당하게 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밥벌이를 적당하게 하냐, 살벌하게 해야지’라고 말했다. 사실 요즘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워낙 높아서, 예전처럼 악역이라고 식당에서 밥 안 주고 쫓아내거나 등짝 때리지 않으신다. 세상이 변했다. 이미지 관리 때문에 연기 스펙트럼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 ‘99억의 여자’를 통해 좀비, 홍가이버 등의 별명이 많이 생겼다.

좀비라니. 땅 파고 나오는 장면은 나도 보고 참 ‘인표스럽다’고 생각했다. 대역 없이 찍었는데, 그 장면이 간단하게 나왔지만 촬영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 보통 일이 아니더라. 별명이 많아 기분이 좋다. 언젠가 댓글을 보면서 방송을 봤는데 내 이름이 꽤 많이 보이더라.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 좋았다.

- 주로 악한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 주목을 받는다. 이미지 고착화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지.

연기자는 그런 두려움을 늘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변화된 인물을 보여주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시청률과 화제성을 잡고, 유행어가 생기면 그런 것들에 의해 사랑받게 된다. 사실 나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99억의 여자’ 사이 많은 작품을 했지만, 두 작품이 강렬하다 보니 악역에서 악역으로 넘어간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회사와 상의해 계속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한다. 다만 타협하지 않는 건 가정이다. 경제적으로 흔들리면 안 되니까 악역을 이어간다는 느낌이 들어도 할 때가 있다. 직장인도 힘들다고 회사를 막 그만둘 수는 없지 않나. 비슷하다.

- 지난해 ‘2019 KBS 연기대상’에서 ‘동백꽃 필 무렵’ 같은 따뜻한 드라마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동백꽃 필 무렵’의 노규태처럼 찌질하면서도 능청스러운 그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아니면 필구처럼 따뜻한 역할. 또 장애가 있지만 따뜻함이 있는 인물에도 도전하고 싶다. 사실 어떤 작품이든 이미지로 모험하지 않으려는 게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나 같은 사람이 멜로를 하고, 원빈이 악역을 하면 재밌지 않을까. 코믹 연기도 욕심난다. 재미있는 성인 드라마 출연도 욕심난다.

- 드라마에서처럼 실제로 본인에게 99억이 생긴다면 어떻게 쓰고 싶은지.

일단 아이들한테 22억씩 나눠주고 싶다. 그러면 일을 안 해도 되고 편할 것 같다. 나머지는 공연이나 작은 영화를 제작하는 데 쓰고 싶다. 내 작은 꿈인데, 지금은 가정을 건사해야 해 어렵다. 언젠가 아이들이 출가하고 여유로워지면 그때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99억의 여자’가 본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이 작품에서 무대에서만 할 수 있는 ‘1인 9역’을 한 느낌이다. 연극에 대한 작은 꿈을 가졌던 정웅인이 tv에서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