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나는 SF로 돌아온 정세랑 작가

좀비물부터 멸종까지 담아낸 10여년간 쓴 8편의 작품 수록

2020-03-05     이경관기자
데뷔 10주년을 맞은 정세랑의 첫 SF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

이 책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저자가 쓴 거의 모든 SF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책에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몰락해가는 인류 문명에 관한 경고를 담은 8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손가락이 자꾸 사라지는 미싱 핑거와 시무룩해지는 그를 귀여워하는 점핑걸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멸망과 멸종이 다가오는 시점, 거대한 지렁이들이 ‘역겨운’ 인류 문명을 갈아 엎는 ‘리셋’, 자신의 목소리가 살인자들을 자극하기 때문에 ‘수용소’에 갇히게 된 승균이 목소리보다 소중한 마음을 비로소 발견하는 ‘목소리를 드릴게요’, 마음결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이야기의 개성도 좋지만, 이 이야기들이 향하는 방향의 곧음 역시 와닿는다.

여성 양궁 메달리스트인 정윤의 팔의 모양을 보고 ‘팔이 아니라 조각 같아요’라고 감탄하던 ‘승훈’ 같은 이들.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멸망을 앞두고 “우리가 다른 모든 종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하기 전에 와줬다는 게 감사할 정도”라고 말하는 ‘리셋’까지.

책은 수록된 8편의 작품 전반에 온기를 유지하면서도 SF로 표현할 수 있는 비판 의식을 잃지 않는 태도 또한 이 소설집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