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법’ 인정한 대한민국 정부

정부 믿고 있었으면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시행령 10% 상향 했을까 비현실적인 정책으로 집회 조장하고 ‘떼법’으로 밀어붙이면 웃돈 던져줘 원칙 져버리는 나쁜 선례의 씁쓸함

2020-08-26     이진수기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속담은 어찌 보면 현실사회를 반영한다.

그냥 툭 내뱉는 말 한마디가 현실을 얼마나 잘 비유하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등 여러 속담은 오늘날에도 즐겨 회자되고 있다.

뭇 백성들의 삶의 현장에서 탄생해 대대로 구전돼온 속담은 웬만한 성현의 말보다 훨씬 피부에 와 닿을 정도니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 지혜가 상당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속담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이 엊그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지진으로 포항은 3년 간 지난 한 과정을 겪어 왔다.

포항은 지진이 정부의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지열발전에 의한 촉발된 인재라며 정부에 지진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지난해 12월 국회는 어렵게 지진특별법을 제정했다. 포항으로서는 힘겨운 한 고비를 넘겼다.

이후 지진특별법 시행령에 무엇을, 어떤 내용을 담느냐가 관건이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 개정안에는 지진피해구제 지원비율을 100%가 아닌 70%로 한정했다.

“이미 정부 방침이 70% 지원인데 우리가 떼 쓴 다고 더 주겠냐. 그렇게 되면 다른 사안에 대해 원칙을 고수하는데 있어 명분이 서지 않는 선례로 작용할텐데, 정부가 그런 짓을 하겠냐.”

“그래도 우리가 가만 있을 수 만은 없잖아. 하는데 까지 해봐야지.”

이런 저런 분위기속에 포항은 지진특별법 제정 때처럼 또 다시 정부기관과 청와대 앞에서 100% 지급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이어갔다.

포항이 70%밖에 안되냐며 지역 차별이라는 구태의연한 구호까지 등장하는 등 정부에 날센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25일 국무회의에서 당초 재산피해에 따른 피해금액을 70%에서 10% 상향해 80%로,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의 피해를 기존 6000만 원에서 최대 1억 원으로 지급한다는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다급히 포항의 여론을 일부 수용한 것이다.

‘우는 아이 젖 주고, 짖는 개(무는 개) 뒤돌아본다’는 속담 격이다.

포항이 정부만 믿고 가만히 있거나 순리적인 방법으로 요구 사항을 관철하려 했다면 지진특별법 제정이나 이번에 상향된 시행령이 통과됐을까.

지난 3년을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치열하게 싸워온 과정을 생각하면 쉽게 단언하기 어렵다.

정부는 법과 원칙을 중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질서가 유지되고 사회안정이 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합리성과 품격을 갖추고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고양시키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

그런데 정부는 포항에 대해 이를 스스로 져버렸다. 원칙의 준수가 아닌 시민들의 기세에 눌려 마지못해 ‘우는 아이 젖 준 다’는 식으로 10%의 웃돈을 던져준 것이다.

또 지방비(도비·시비) 20% 부담으로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정부의 재정이 더 악화되게 됐다.

애초부터 현실적인 지진피해 극복 정책을 내놓지 못한 것 자체가 포항과 중앙정부의 갈등을 유발하고 집회와 시위를 조장케 했다.

포항이 지진특별법 제정, 시행령 통과라는 사상 초유의 지진피해 극복에 따른 2개의 큰 산을 힘겹게 넘었건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은 이 씁쓸함은 무엇일까.

공정과 정의를 내세운 지금의 정부도 집단 목소리인 ‘떼법’이 통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향후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오늘의 포항 사례가 우려된다.이진수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