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 무너지는 것은 달갑지 않다

2021-02-16     손경호기자
‘법대로’의 반대는 무엇일까?

우선 법과 관련된 단어는 불법, 위법, 탈법, 편법, 무법, 합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불법(不法)은 ‘불법 도박’처럼 법에 어긋난 것을 말하고, 위법(違法)은 법률이나 명령 따위를 어기는 것으로 불법과 비슷한 말이다. 탈법(脫法)은 법이나 법규를 지키지 않고 그 통제 밖으로 교묘히 빠져나가는 것이고, 편법(便法)은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는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을 일컫는다.

무법(無法)은 말 그대로 법이 없는 것이고, 합법(合法)은 법령이나 규칙에 맞는 것으로 적법과 같은 뜻이다. 불법·위법·탈법은 처벌을 받고, 편법·무법·합법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들 단어 가운데 ‘법대로’와 비슷한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 합법이 가장 비슷한 단어일 것이다.

그렇다면 ‘법대로’의 반대는 무엇일까? 불법, 아니면 위법. 또는 탈법? 법률적 용어로만 따진다면 불법, 위법, 탈법 등이 법대로의 반대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적 개념은 다르다. 법대로의 반대 개념은 바로 ‘우리끼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끼리’라는 단어는 동지, 의리, 동질성을 갖는다. 보통 한국인들은 ‘우리 아들’, ‘우리 아내’,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라고 말한다. ‘내 아들’, ‘내 아내’, ‘내 아버지’, ‘내 어머니’라고 사용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유독 ‘나’ 대신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나를 강조할 경우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사람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리법칙’은 심리학박사인 김효창 저서 ‘통해야 통한다’에 잘 분석되어 있다.

“가까운 사이에는 너와 나의 구별도 없다. 서로 흉허물을 감싸주고 덮어주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 사이에는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법대로’라는 말에는 ‘우리관계가 파괴됐다’와 ‘우린 서로 남남이 됐다’라는 의미가 포함된다.”(통해야 통한다, 김효창 저, 바람, pp.16~17).

이회창 전 총재는 ‘원칙’과 ‘소신’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대쪽 이미지도 있었다. 한마디로 ‘법대로’ 이미지였다. 결국 이 같은 단어들은 이 전 총재에게 차갑다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차갑다는 이미지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원칙과 신뢰이기 때문이 아닐까? 다만 박 전 대통령에게 신뢰는 친박세력들과의 ‘우리끼리’ 의리로만 보일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유승민 전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 내쫓기도 했다. 오죽하면 진박 감별사가 활동하는 정치 코미디가 자행됐을까? 결국 친박세력과 ‘우리끼리’로 뭉쳤던 박 전 대통령은 탄핵 대통령이라는 수모를 겪고, 옥고를 치르고 있다. 더구나 친이·친박 간 갈등은 보수세력의 분열로 대선 패배 및 지방선거, 국회의원선거 패배 등으로 이어지며 보수 궤멸의 상황까지 발생했다.

제주도에서도 한때 ‘조배죽’이라는 단어가 회자됐다.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뿐이다’라는 조폭 스타일의 이 단어도 ‘법대로’가 아닌 ‘우리끼리’의 모습이다.

최근에 정치권에서는 인사청문회 패싱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장관 인사청문회 무용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인사청문회 패싱은 불법이 아니다.

다만 우리 편은 어떻게 해도 괜찮다는 모습은 ‘우리끼리’일 뿐이다. 개인이라면 가까운 사이에 원칙을 너무 강조하면 정(情)이 없어 보인다. 조그만 흉허물은 서로 감싸주고 덮어주는 것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원칙이 무너지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다.

손경호 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