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족’론

2007-12-27     경북도민일보
 김삿갓은 어릴 때 집안이 멸족의 화를 입어 형과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도망가 숨어 살았다.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 때문이었다. 훗날 멸족의 화가 폐족(廢族)으로 사면되고 다시 가벼이 되어 과거를 보아 장원급제까지 했다. 그러나 장원을 딴 글은 조부를 조롱하는 글이었다. 집안 내력을 몰랐던 것이다. 그 자책과 폐족에 대한 사회적 멸시를 등지고 방랑자가 되었다.
 김삿갓이 겪은 `폐족’은 죄를 짓고 죽어서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되는 사람의 족속을 말한다. 폐족이 되었던 조선시대 명사로는  김삿갓에 앞서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 다산 선생은 강진에 유배되어 있을 때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희는 지금 폐족이니라.” 고 적었던 것이다. `천주쟁이’란 죄를 얻어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그 자식들은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는 폐족이 되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안희정씨가 엊그제 “친노(親盧)라고 표현된 우리는 폐족입니다.” 라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한다. 대선에서 여권이 형편없이 패하자 노대통령과 그 그룹을 다산 선생과 그 폐족으로 비유한 것이다. 상황에 맞는 인용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지난 5년간 큰소리쳤던 세력들이 일단 몸을 낮추는 자세로 보인다.
 친노세력들이 몸을 낮추는 거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안씨는 내년 봄 총선에 충남논산에서 출마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같은 친노 세력의 몸 낮추기는 새로운 살길을 찾기 위한 일시적 퍼포먼스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폐족이었기에 김삿갓은 탁월한 풍자문학을 남겼고 다산의 친족들, 그 형 약전은 자산어보를, 장조카 학유는 농가월령가 같은 값진 창조적 유산을 참 많이 남겼다. 현대의 `폐족’들은 말로만 폐족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정재모/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