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봉황대 3·1운동 발상지 표지석 제막

1919년 3월 13일 만세시위 발각되며 안타깝게 무산돼 이틀 뒤인 15일 기독교·천도교·시민 운동으로 이어져

2022-03-01     나영조기자

경주시는 지역 3·1운동 발상지인 봉황대에서 시민 2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 3·1독립만세운동 발상지’ 표지석 제막식을 1일 거행했다.

경주시가 주최하고 경주 3·1독립만세운동 발상지 추진위원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는 독립선언문 낭독, 기념사, 만세삼창 순 등으로 진행됐으며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선조들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표지석 상판은 가로 1.8m 세로 1m 크기의 자연석으로 표지석 전문에는 서예가 덕봉 정수암 선생이 쓴 ‘경주 3·1독립만세운동 발상지’라고 새겨져 있다. 표지석 받침은 가로 2.2m 세로 0.3m 크기로 이곳이 1919년 3월 15일 경주3·1만세운동이 일어난 역사적인 장소라는 내용과 당시 독립 운동에 대한 의의가 자세히 담겼다.

경주에서는 지난 1919년 3월 13일 노동리교회(현 경주제일교회) 신자를 중심으로 봉황대 일원에서 만세시위가 예정됐지만 일제에 의해 발각되면서 안타깝게 무산됐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이 일반에 알려지며 이틀 뒤인 1919년 3월 15일 기독교인, 천도교인, 시민 등이 참여한 만세운동이 성공적으로 거행됐다.

반면 이 같은 사실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경주시와 추진위원회는 이들의 항일정신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표지석을 설치하고 이날 제막식을 가졌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경주 3·1독립만세운동 표지석 설치로 지역 독립운동사를 시민에게 널리 알려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선조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후손들에게 잘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경주 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서울파고다공원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영향으로 경주 봉황대 앞에서 일어났던 경주의 대표적 국권회복을 위한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