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 국뽕에 취하다

이철우 칼럼

2022-08-31     경북도민일보

지금으로부터 430여 년 전,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당파싸움으로 혼란스러웠던 조선을 침략했다. 서세동점으로 유럽 상인들이 들어와 서양 문물을 일찍이 받아들였던 일본 왜군은 조총으로 무장했다. 활과 창으로 전장에 나선 조선 병사들은 조총 앞에 추풍낙엽이 되었고, 7년 동안 처참하게 국토를 유린당했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도 결국 조총의 탄환에 전사했다.

그로부터 320년이 흘렀다. 서구열강의 힘을 실감하고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중국과의 전쟁(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시아와 대립할 정도로 강대해졌다.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 휘둘리던 조선은 결국 1910년 일본에 강제 합병되어 나라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이 세계 2차대전에서 미국에 패배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 당시 조선의 과학기술은 대장간에서 망치질로 칼과 쟁기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일본은 거대한 군함을 만들어 태평양을 지배했고, 비행기를 만들어 하와이까지 날아가 미국 함대를 폭격했으니 말이다.

이 나라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동족상잔 6·25전쟁이 발발했다. 소련제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 화염병을 던지다가 저지되지 않으면 수류탄을 여러 개 묶어 품에 안고 육탄돌진하기도 했다. 낙동강까지 전선이 밀려 이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어 진군하였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한반도는 다시 두 동강이 난 채 휴전되었다.

전쟁이 멈춘 국토는 폐허 그 자체였다. 학교나 병원, 공장, 도로 등 거의 모든 사회 기반 시설이 파괴되었고, 공업과 농업이 생산력을 상실하여 전체 인구의 25% 이상이 기아 위기에 직면했다. 외국 기자들이나 학자들은 “지구상에서 한국이 가장 희망이 없는 나라”라고 단정했다.

그로부터 불과 70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2021년도 기준 대한민국의 전체 GDP 순위는 세계 10위이며, 9위 캐나다와는 1,800억 달러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보다 180배나 더 큰 영토에 천연가스, 원유 등 막대한 자원을 가진 러시아보다도 경제력 규모에서 앞서 있다.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가슴 뜨겁게 벅차오르지 않는가. 서방의 선진국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일들을 대한민국은 불과 70년 만에 해낸 것이다. 그것도 자원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조그만 나라가, 과학기술이 전무 했던 나라가, 전쟁에서 폐허가 된 나라가, 맨주먹 쥐고 의지 하나로 세계에서 단 한 번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요즘 들어 더욱 가슴 벅차게 하는 일이 있다. 바로 K-방산이다. 지난 7월에 폴란드와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를 합쳐 약 20조 원대의 기본계약 체결에 이어 그저께 26일 역대 최대 수출액인 7조 6000억 원대의 1차 계약을 체결하며 ‘잭팟’을 터트렸다. 올해 상반기에만 아랍에미리트와 4조 원대의 천궁-2 미사일, 이집트와 2조 원대의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각각 따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폴란드를 필두로 아프라카의 모로코, 남미의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의 국가에서도 한국산 무기 도입에 대해 협상 중이다. 유럽의 선진국과 군사 강국에도 진출하고 있다. 호주와 노르웨이에선 레드백 장갑차, 전차, 자주포를 두고 독일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급기야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군사력을 가진 초강대국인 미국 시장의 문도 적극적으로 두드리고 있다.

미국 CNN은 한국방산 무기 수출에 대해 특집으로 상세히 보도하며 한국은 이미 방산 무기 시장에서 메이저리그에 진입했고,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어 방산 분야 4대 강국으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중국은 연일 한국산 무기의 성능을 폄하하고, 이를 시샘하는 일본은 수출금액으로만 따져볼 때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멀찌감치 따돌렸다. 이 모든 게 무기 개발을 시작한 지 불과 수십 년 만에 이룬 기적이다. 소총 한 자루 만들지 못해 미군이 폐기하려던 무기들을 얻어와 사용하던 나라가 말이다. 방산 분야는 아니지만 원전 수출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이미 이집트와 3조 원의 계약을 체결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원전의 효용성이 재부각되어 아랍권과 유럽지역에 원전을 수출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거울을 바라본다. 이전투구식 국내 정치판에 넌더리가 나 찡그렸던 얼굴에 K 방산, 원전 수출 희소식으로 오랜만에 환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창밖에 시원스레 비가 내리고 있다.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고생한 선배 세대들의 피땀을 다 모으면 내리는 저 빗물보다 많으리니, 이 저녁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 준 선배 세대에게 감사하면서,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며 뜨거운 가슴을 좀 식혀야겠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