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별의 죽음에 관한 짧은 이야기

최승호 시인의 『마지막 눈사람』출간

2023-03-12     손경호기자
『눈사람 자살 사건』의 저자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최승호 시인이 최근 어른을 위한 우화 『마지막 눈사람』(최승호 지음, 상상 펴냄)을 출간했다.

『마지막 눈사람』은 27개의 장면을 상단과 하단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27개의 장면 상단에서는 빙하기 지구에 홀로 남은 눈사람의 독백이 한 편의 이야기처럼 전개되고, 27개의 장면 하단에서는 눈사람의 상황과 직간접으로 연관성이 있는 작은 서사들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단의 이야기는 눈사람의 말로도 들리고, 또 다른 등장인물로 느껴지기도 하며, 눈사람을 닮은 삽화들과 함께 끊임없이 독자들을 흥미롭게 한다.

특히 이 책은 우울과 불안, 고독과 절망에 대한 이야기다. 독자들은 끝없이 엄습해 오는 고통과 좌절을 고독으로 버틴 눈사람을 만날 수 있다. 우울과 불안, 절망과 고독이 무시로 우리를 덮친다. 그러나 작가는 어떤 거짓된 위로도 거부하며 고독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짧고 쉽게 읽히는 우화다. 하지만 최승호 시인은 『이솝 우화』나 『동물 농장』이 보여준 기존의 우화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눈사람이 절망하는 그로테스크한 동화로, 자신의 몸이 얼어붙는 듯한 은유로, 깊은 슬픔과 고통의 기록으로, 문명의 폭력에 죽어 가는 생태의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모두가 사라진 빙하기에 홀로 남은 눈사람은 외로움을 넘어 고독을 응시한다.

류신 중앙대 유럽문화학부 교수는 해설에서 “우리는 소통이라는 핑계로 새로운 관계 맺음에 집착한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과의 대화는 회피한다. 잠시라도 고독을 참지 못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뿐이다. 고독이 소외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은 내면의 진솔한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청진기이다. 절대 고독은 자아를 세상 전체와 독대하게 만든다. 단독자로서 무변광대한 우주와 마주 서라!”며 마지막 눈사람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우화 전체를 감싸는 작가의 그로테스크적 상상력은 현실의 모든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풀이 무성한 인도의 물소와 ‘나’, 겨울 밤하늘에 희미하게 보이는 외뿔황소자리와 ‘나’, 눈사람과 ‘나’가 서로 섞이고 만난다. 인간 역시 많은 것들과 함께 사라지거나 죽어 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은 더 알게 된다. 눈사람의 죽음은 단순히 생명이 없어지는 죽음과는 다른 것이다. 작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독자들과 함께하려고 한다. 마침내, 독자는 눈사람과 우주와 빙하기와 고독 속에서 ‘나’를 이해하게 된다. 허식과 이기가 난무하고 소통과 철학이 부재하는 시대에 이 책이 더욱 우리에게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