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양로원

2023-08-15     김희동기자

- 박청환
 

 

닳고 해진 비누들 양파망에 모였습니다

세숫비누 여러 개와 빨랫비누 한 개

한 평생 제 살을 깎아 남을 씻겨온 것들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할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먼 산을 바라봅니다

마지막 살 한 점까지 내어놓으면

큰 놈 윗도리에 묻은 얼룩도

소식 없는 작은 놈 작업복 해진 무릎도

다시 말쑥해질텐데



원래는 네모 반듯했습니다

물에 불은 살이 뭉텅뭉텅 떨어져 나가고

때로 빨래 방망이에 헛맞아 아찔했던 순간순간

제 살을 깎아 견뎠습니다

이리저리 깎여 네모도 세모도 동그라미도 못 되고

그저 볼품없이 찌그러진 모양입니다



평생 물가에서 한뎃잠 자던 비누는

제 몸 누이던 수돗가 좁디좁은 비눗갑마저 내어주고

?빨래터 양파망 속에 엉겨 붙어

서로의 품을 파고듭니다

까끌까끌 늙어갑니다

 

 

 

 

 

 

 

 

 

 

 

 

박청환

 

충북 제천 출생

2017년 공무원문예대전 은상

2021년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현재, KORAIL 1호선 전동열차 승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