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

2024-04-28     김희동기자

- 류 현





새들과 손가락을 걸었다



내 무릎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에 걸려 엄마는 자주 넘어졌다



같은 자리를 바쁘게 굴러다니던 그릇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고

엄마의 표정이 다 젖은 후에야 나는 잠에서 깼다



신호등을 잘 지키라는 엄마의 당부를 뒤로하고 최대한 멀리 떠나갔다



새의 발자국이 검은 전선의 매듭을 건너뛸 때마다

가방 안에 빛을 구겨 넣었다



자동차는 조급함을 실어나르다 죽음을 배달하는 우연을 저질렀고

스위치를 더듬다 빌딩에 갇힌 경비원은

늙은 아버지 마지막을 밝혀줄 조등 하나 챙기지 못했다



야시장에서 포장해온 스티로폼 용기에 수저를 넣고 텔레비전을 봤다

빛나는 사람들을 따라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내 얼굴을 어루만지고 돌아선 엄마의 긴 목이 생각났다

새벽으로 굴러떨어진 누군가의 심장을 향해 개들이 짖었다 시계 방향으로 산책을 나온 노인이 신호등을 무시했다

나는 아침을 주우려고 하이힐을 신었다

살얼음으로 빛나는 보도블록을 조심히 걸었다 살찐 비둘기들이 낮게 날았다


회색빛 울창한 도시에서 발가락이 아팠다

 

 

 

 

 

류현 (본명 유숙희)

2018년 《시작》으로 등단

2023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

E. danayu08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