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호황

2008-11-25     경북도민일보
 사람 좋아하는 누군가가 친구들을 모아 와인까지 곁들여서 점심을 걸게 샀더란다. 그날 한정식집 여주인이 눈물을 보이더라는 이야기가 듣는이들을 우울하게 했다.  “나흘만에 손님을 처음 모신다”다던 여주인의 눈가에 물기가 번지더란 이야기였다. 요즘 불황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현장의 단면도라해서 지나칠 게 없을 듯싶다.
 이렇게 혹심한 불황속에서도  번창 일로인 기업들이 있다고 한다. 다름아닌 라면, 즉석식품 판매율이 두 자릿수로 늘었다는 기업체들이다. 농심,오뚜기, 한국야쿠르트 이런 회사들이라나 보다. 지난 10월 현재 판매액이 1조원 안팎이다. 판매 신장률이 32%나 오른 기업도 있다. 5억개, 10억개나 팔린 품목도 있다니 이야말로 `효자 상품’이 아닌가.
 몇년전 샛별처럼 떠오른 소녀 육상선수가 있었다.그때 그 선수는 라면만 먹고 뛰었다고 보도됐다. 선수 본인은 물론 이 보도를 마뜩찮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어찌됐건 라면은 이처럼 주머니가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먹을거리다. 이런 라면 판매가 급신장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생산 업체는 싱글벙글이니 `야누스’가 따로 없다 싶기도 하다.
 대충 먹어 허기만 끄는 식사엔 `때운다’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열심히 일하다 밥 때를 놓친 사람이 라면을 먹고 배고픔을 잊는다면 딱맞는 표현이다.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이렇게 쓰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권장할 표현은 아닌 것 같다. 한 두 사람도 아닌 온 국민이 달려들어 수십억 개씩 먹어치우는 `때움의 식사’가 반가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하는 소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60년대에 이 땅에 라면을 보급토록 한 의도는 국민들이 배고픔이라도 벗어나게하자는 것이었다. 일종의 현대판 `구황식품’이었던 셈인데 이제는 `불황 식품’이 돼버렸다. 라면 생산업체에겐 `호황 식품’이지만.    김용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