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참배

2006-08-20     경북도민일보
 1543년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신부는 일본 가고시마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당초 인도로 파견됐으나 이슬람 교도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상인들로부터 일본은 이슬람 교도나 유대인이 없는 선교의 천국이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린 것이었다. 사비에르 신부는 1000여명의 일본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기독교를 불교의 새로운 종파 정도로 받아들였으며, 오다 노부나가 같은 영주들은 무역을 통해 총포와 화약 확보에 이용하려고 했다.
 사비에르는 일본에서의 선교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불과 2년 만에 떠나야 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부르짖으며 서양의 문물을 도입했으나, 종교는 예외였다.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는, 일본 고유의 민족신앙인 신도(神道)가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주도 교리도 없는, 종교 아닌 종교가 바로 신도다. 전국의 신사(神社)가 8만여개에 달하는 만큼, 숭배의 대상도 다양하다. 그 가운데 천황은 살아있는 신적 존재다. 국가와 종교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국수주의가 기승을 부렸고, 결국 일본은 무모한 침략전쟁을 자행하였다. 2차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의 맥아더 사령관은 신의 지위에 있던 천황을 인간의 자리로 끌어내렸다.
 1946년 1월 쇼와 천황은 방송을 통해 “나는 인간일 뿐, 신이 아니다”라는 인간 선언을 하게 되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동북아 3국에 긴장감이 감돈다. 야수쿠니는 일왕 메이지가 도쿠가와 막부와의 전투에서 숨진 3500여명을 추모하기 위해 1869년 세운 호국 신사다. 2차대전 A급 전범 14명을 이곳에 합사(合祀)한 것이 잘못이다. 일본인들이 무슨 종교를 믿든 상관할 바 아니나, 일본 총리가 A급 전범들을 참배하는 것은 침략전쟁의 희생자들을 두번 짓밟는 행위가 아닌가.
 /金鎬壽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