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의`겨울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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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남자의`겨울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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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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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브로드웨이가의 노숙자 소피는 겨울이 오자 경범죄를 저질러 브라논섬교도소에서 한철을 따뜻이 보내자는 아이디어를 내고는 고급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배불리 시켜먹고 돈이 없다고 하려 했지만, 찢어진 바지가랑이와 해어진 구두를 본 웨이터가 얼씬도 못하게 내쳐버린다. 무단히 가게 유리창을 깨도 보지만 경찰관은 그를 범인으로 생각해주지 않고, 여자행인을 성희롱해도 여인이 오히려 좋다고 엉겨 붙는다.
 고성방가를 하니 승리의 기쁨을 발산하는 축구팬으로 좋게 봐주고, 남의 우산을 자기 것이라 우기자 우산주인은 주웠을 뿐이라며 오히려 사과하고 달아난다. 계획이 자꾸 틀어지는 데 지친 소피는 마침내 교회의 아름다운 찬송가 소리에서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뉘우치게 된다. 떳떳이 살아보겠다는 맘을 먹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교회의 철창을 타고 넘으려는(아마 기도를 할 요량으로) 순간에 순찰경관이 수상쩍은 이 사내를 붙잡아 약식재판에 넘겨 징역 석 달을 안겨준다.
 미국작가 오 헨리의 유명한 단편 `경찰관과 찬송가’ 줄거리를 애써 적어보는 것은 이 엄동설한에 소피 같은 사내가 우리사회에 정말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경찰서는 지난 11일, 없는 사건을 허위신고하여 경찰관을 출동케 하고, 그 경관에게 슬레이트조각을 휘두르며 온갖 욕설을 내뱉은 40대 남자를 좋게 타일러 귀가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경찰관을 위협하고 욕설을 퍼부은 자를 구속 품신하지 않고, 귀가시킨 건 경찰로서는 이례적으로 관대한 조치다.
 `제발 날 교도소로 좀 보내 달라’는 이 남자의 딱한 사정을 안 경찰이 선처를 한 모양이다. 막노동꾼인 그가 최근 밀린 임금도 받지 못하고 생활고에 빠지자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교도소가 낫겠다고 생각하고 엉뚱한 짓을 저지른데 대한 연민이다. 빈부양극화니, 소외계층이니 하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살아가는 오늘날이긴 하지만, 정녕 우리사회에 교도소서 겨울을 나는 게 오히려 낫다는 부류가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런 경우가 어디 그 남자뿐일까 싶기도 하고 그의 `겨울자유’가 소피 같은 형국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싶으니, 경찰의 그 관대한 조치마저 괜스레 불안하다.  정재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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