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도병들이 흘린 구국의 피, 동해안은 기억한다
  • 김영호기자
학도병들이 흘린 구국의 피, 동해안은 기억한다
  • 김영호기자
  • 승인 201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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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목 영덕군수가 심혈을 기울여 조성에 성공한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 조감도.
 영덕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 조성

    영덕 남정면 장사리 일대 6만8천㎡에 309억 투입 2013년 완공
    위령탑·위패 봉안소·추모집 등 갖춰 772명 어린 학도병들 넋 기려
    김병목 군수 “대한민국 대표하는 세계적 호국명소로 만들어 나갈 것”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최근 개원한 제19대 국회에 종북 주사파 국회의원의 입성으로 국민적 저항이 거센 가운데 목숨 바쳐 조국을 수호한 전물장병과 참전용사에 대한 재조명과 함께 상응한 대우가 뒤따라야 마땅하다는 여론이 드세게 일고 있다. 김병목 영덕군수는 지난 2007년부터 특수시책으로 전물장병들의 투철한 애국심을 기리고 후세들의 호국정신 고취와 함양을 위해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국가보훈처를 비롯한 관계기관과의 꾸준한 협의를 진행한 결과 국가보훈처의 협조로 내년까지 309억원을 투입해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을 세우게 됐다. 이에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6·25동란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작전 성공을 위해 양동작전으로 전개됐던 영덕군 남정면 장사상륙작전 재조명으로 목숨을 바친 어린 학도병들의 넋을 기리고 백발의 생존 학도병들의 평생 소원을 이뤄줄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 조성 과정을 자세히 소개한다.

 1950년 9월 19일 새벽 6시, 부산에서 급파된 해군 수송선인 LST 조치원호가 장사리에 도착, 본격적인 철수작전이 시작됐다. 아군 공군기 3대의 엄호 아래 육지와 LST 사이에 밧줄을 연결하고 빗발치는 적의 로켓포와 네이팜 포격을 피해 환자와 대원들은 조치원호에 승선하기 시작했다.
 아직 2개 대대 병력 60여명의 병력이 승선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의 박격포탄과 소총탄이 함상에 집중 포화되자 함장은 더 이상의 승선은 위험하니 중지하고 떠날 것을 재촉했다. 적의 공격이 거세지고 설상가상으로 간조가 시작되자 조치원호는 결국 밧줄을 절단하고 마지막 엄호병력 39명을 남겨둔 채 해안을 빠져나왔다.
 1950년 9월 14일 오후 4시부터 9월 19일 오후 3시까지 6일간에 걸쳐 139명의 사망자와 92명의 부상자, 문산호 1척 침몰이라는 치열한 사투를 벌인 `장사상륙작전’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장사상륙작전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때 맥아더 장군이 전세 역전을 위한 UN군의 총반격작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명령하고 작전 성공을 위해 동해안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 적 후방 교란을 위한 양동작전을 하달함으로써 시작된 전투다.
 772명의 어린 학도병으로 구성된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 대원들은 3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훈련을 마치고 전쟁의 전세를 뒤바꿀 운명의 군사작전인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북한군 2개 사단 정예부대가 이미 포진하고 있는 남정면 장사리 해안에 상륙작전을 과감히 감행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있기 하루 전날인 1950년 9월 14일 오후 4시,부산항 제4부두 2700t급 LST 문산호에 유격대대 772명 등 총 841명이 승선, 부산항을 북상해 15일 새벽 5시 장사리 해안 접안을 시도했다.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바람이 세차고 파도가 높은 악천후 속에 장사리 남쪽 해안으로 접근하던 문산호는 불행히도 좌초되고 말았고 이미 주둔해 있던 적의 맹렬한 공격 속을 해치며 10시간의 사투 끝에 반월형의 방어선을 구축하며 가까스로 상륙하는데 성공했다.
 대부분 10대 학도의용군으로 편성돼 있던 육군독립 제1유격대대는 현역 군인 이상의 투혼을 발휘, 6일간의 교전 동안 장사리 일대 인민군 소탕, 고지 점령, 교두보 확보 및 보급로 차단 등의 성과를 올려 인민군 제5사단과 제2군단의 주력부대와 전차 4대를 동해안으로 유인하는데 성공했다.
 만약 유엔군이 자신들의 한반도 철수를 염두에 둔 `데이비드슨 방어선(Davison Line)`을 준비한 상태에서 실시한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미국과 유엔군이 한반도를 포기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상태였기 때문에 장사상륙작전의 이와 같은 성과는 대한민국 구국에 결정적으로 일조를 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그날, 10일간의 기초 군사훈련만을 받고 충분한 계획도,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구국의 일념 하나만으로 쏟아지는 적의 총탄과 로켓포에 맞서 싸워야했던 장사상륙작전 772명의 어린 학도병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아직 많지 않다. 이에 1980년 7월 14일 전투에 참전했다 생존한 대원 38명이 명예 회복과 함께 유적지 성역화를 위해 대구에서 장사상륙작전 유격동지회를 결성하고 경기도 양평 청운사 주지 스님의 전국적 모금운동으로 1991년 9월 14일 상륙작전지였던 장사리 해안에 위령탑과 전적비를 세워 지금까지 매년 위령제를 거행해 전몰장병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특히, 1997년 3월 6일 남정면 장사리 앞 해안을 수색하던 해병대 제1사단 대원들에 의해 바닷속 갯벌에 좌초된 LST 문산호가 발견되면서 이를 계기로 기념사업 준비와 함께 장사상륙작전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이후, 영덕군은 2007년부터 장사상륙작전 재평가를 위해 체계적인 평가작업에 착수했는데 장사상륙작전 유격동지회와 함께 추모음악회, 학술세미나, 국군의 날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 등 전국적인 홍보를 통해 잊혀져 가던 장사상륙작전 전몰장병의 호국정신을 일깨우는데 노력해 왔으며 특히 김병목 영덕군수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당시 주민생활지원과장으로 재직중이던 김성락 현 기획감사실장의 재조명을 위한 본격적인 기본계획 수립과 관계 중앙부처 방문 등의 예산 확보를 위한 물심양면의 헌신적인 업무 추진에 따라 지난 2009년부터 2012년에 걸쳐 장사상륙작전 전승지를 호국정신 발원지로 조성토록 하는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조성사업’ 사업비 309억원을 국가보훈처로부터 마련하는 결실을 맺었다.
 영덕군은 장사상륙작전의 재조명과 성역화를 위해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74-2 일대 6만8000㎡에 309억원의 예산을 들여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을 오는 2013년까지 완공토록 하고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대규모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전승기념공원에는 1320㎡의 위령탑과 위패 봉안소, 우국청년의 추모집, 전시교육관, 맥아더 장군 친필석, 승리의 광장, 청소년 수련관 등이 들어선다.
 김병목 영덕군수는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 조성으로 장사상륙작전으로 희생된 전몰용사의 호국정신을 추모하고 국난 극복의 현장을 기록·보존하는 교육장으로의 활용을 통해 365일 추모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호국명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영호기자 kyh@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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