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한땀에 철학의 손길 묻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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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한땀에 철학의 손길 묻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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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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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해 공들이는 작업
행위반복 통해 인내 터득
수행이나 마찬가지죠
 
정성이 최고의 작품 결정
세계최고 패션의 꿈 키워요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보유자인 김해자씨가 바느질을 하다 환하게 웃고 있다.
 
 
 
 
 
 경북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누비명장’ 김해자(54·여)씨의 공방은 항상 조용하다.
 김씨가 제자 6명과 함께 작업하는 공간이지만 적막감 마저 감돈다. 모두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바느질에만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비일을 하는 김씨의 `철학’은 이같은 고요에서 비롯된다.
 “예술인은 자기부터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바느질은 남을 위해 공을 들이는작업이기 때문에 평정과 고요를 찾는 수행이나 마찬가지죠”
 김씨의 공방에는 여느 작업장에서 들리는 그 흔한 음악 소리 조차 새어나오지 않는다. 오직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고 있는 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단순한 행위의 반복을 통해 인내의 의미를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천을 누비며 앉아있는 김씨의 자태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마저 느낄 수 있었다.
 김씨는 인내와 정성을 바탕으로 외길을 걸어온 결과 1996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인 누비장 보유자로 지정됐다.
 누비는 일반적으로 옷감의 보온을 위해 천 사이에 솜을 넣고 함께 홈질해 맞붙이는 바느질 방법이다. 누비작업은 바늘 땀 간격이 보통 0.3㎝, 0.5㎝, 1.0㎝ 이상으로 구분될 정도로 섭세한 작업인 만큼 정신을 집중시키지 않고 정성을 쏟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다.
 한복을 비롯한 다양한 의류뿐만 아니라 침구류, 손가방, 모자, 토시 등 천을 소재로 한 각종 생활 필수품들이 누비 작업으로 만들어진다.
 김씨는 어머니의 바느질일을 보조하면서 누비일을 배웠다.
 김씨는 1952년 경북 김천 계령면에서 태어났다. 김씨의 집안은 비교적 부유했으나 김씨가 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자 가족들은 서울 도봉구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이때부터 바느질이 김씨 집안 생계의 버팀목이 됐으며 김씨도 어머니의 삯바느질을 도와야만 했다. 김씨는 어머니의 일을 도우면서 복장학원에 다니고 승복을 만드는 집에서 틈틈이 누비일을 배웠다.
 “바느질을 하면 굶을 일은 없어요. 10원짜리 하나 나올 곳이 없는 막막한 상황이 되면 주위에서 일감을 주거든요.”
 김씨는 30세 때 경남 창녕군 영상면으로 둥지를 옮겼다. 창녕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20년 동안 승복 누비일 하고 있는 분이 이 지역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짐을 쌌다.
 창녕에 터를 잡은 김씨는 시장에서 바느질을 하며 승복 누비를 배우고 과거 의복을 재현하는 일에 매달렸다. 어머니를 도우면서 배운 바느질이 생계수단이 됐고 나아가 자신을 다스리며 수양할 수 있는 `천직’이 된 것이다.
 사춘기 때 잠시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바느질이 아름다운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이치를 깨달은 김씨는 바늘과 실, 천을 친구 처럼 여기며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입을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몇달씩 쏟는 정성을 쏟는 일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재봉틀과 양장의 등장으로 거의 사라져가던 누비가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계기는 1992년 10월 제 17회 전승공예대전에서 한복을 출품한 김씨가 국무총리상을 받으면서부터다.
 이전까지 누비는 세상 사람들에게 생소한 분야로 받아들여졌으며 꾸준하게 누비일을 해온 `장인’도 거의 없었다.
 그는 “전승공예대전에서 누비가 세상에 알려지기는 했지만 독립적인 분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면서 “이후 줄기차게 누비의 창의성과 그 가치를 설명한 결과이제는 누비가 전통 바느질 분야로 자리잡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1994년 11월 경복궁 전통공예관 특별초대전 출품, 2000년 4월 개인전, 2000년 9월 천연염색 작품전시, 2000년 11월 개인전, 2001년 6월 개인전 등 숨가쁘게 작품활동을 해왔다. 누비장으로 지정된 뒤에는 후진양성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2000년 창녕에서 경주로 터전을 옮긴 뒤부터는 수십차례의 워크숍과 외부 강연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으나 3년전부터는 외부 강연을 접고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김씨는 누비가 세계 최고의 패션이 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삯바느질에서 시작해 승복으로 다듬어지고 한복으로 두각을 드러낸 김씨는 양장 분야까지 섭렵해 외국의 유명 패션쇼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밍크코트를 능가하는 최고의 패션 작품을 만들겠다’는 30대에 세운 꿈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누비를 세계최고의 패션으로 키우겠다는 김씨는 어떤 누비 작품을 최고로 평가하고 있을까.
 김씨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섬세하고 정교한 솜씨가 발휘된 작품이면 좋은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얼마나 정성이 담겼느냐’가 가장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따뜻하게 입을 옷을 만드는 정성이 최고의 작품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라고 김씨는 힘주어 말한다.
 김씨는 제자들도 쉴 틈없이 누비일에 매달리도록 한다. 여유시간이 많아지면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젊은이들이 인내를 갖고 누비 일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니 정성이 없다면 작품을 끝마칠 수 없죠.”
 김씨의 희망은 제자들을 많이 길러 누비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다. 가정의 평안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 논리는 이렇다.
 부인이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공을 들이다 보면 마음이 평정되고 자식과 남편도 평안한 아내에게 기댄다. 그렇게 되면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고 남편과 아이는 건전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며 이는 곧 우리사회 전체의 평온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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