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지붕 위 빗소리, 서글프고 먹먹한 사랑을 떠올리게 하네
  • 이경관기자
함석지붕 위 빗소리, 서글프고 먹먹한 사랑을 떠올리게 하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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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다섯 번째 소설집... 문예지 실은 단편 11편 담아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소설을 쓴다는 건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으며 어두운 도로를 따라 환한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일과 같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은 무조건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 곳이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끔찍하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340쪽)
 김연수는 다섯 번째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이 책은 올해로 등단 20주년이 된 김 작가가 지난 5년 동안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11편을 담았다.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한국문단의 기둥으로 자리 잡은 김 작가는 폭 넓은 독서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채득한 인문학적 소양을 소설 전반에 적절히 투영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이번에 펴낸 소설집은 이전의 소설과는 달리 편안하게 읽힌다.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풀어놓는 서술 방식은 독자들이 조금 더 쉽게 소설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 소설집에 담긴 작품을 쓰는 동안 작가는 아버지를 비롯해 장모와 벗을 잃었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한 뒤 쓴 작품 속에는 유난히 죽음과 가까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떠나는 사람과, 그 사람을 그리는 사람들의 상실감은 이 책을 지배하는 하나의 주제로 인식된다.
 표제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화자인 `나’가 현재 자신의 아내가 된 `진경’을 만나러 뉴욕에 갔다가 내친김에 플로리다에 있는 팸 이모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나는 팸 이모의 지난 사랑이야기를 듣는다.
 팸 이모는 언제나 사랑에 열정적이었지만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다들 그녀보다 먼저 죽었다. 그녀의 남편 폴이 그랬고 젊은 시절 미칠 듯이 사랑해 3개월 동안 제주도로 도피해 동거를 했던 영화감독도 그랬고, 뱃속의 아이 역시 그랬다.
 “함석지붕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정도 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81쪽)
 미래가 없던 연인의 사랑과 너무나도 닮아있던 그 빗소리는, `시’라는 정점 없어 더 서글펐고 먹먹했다.
 단편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은 죽은 엄마의 노래를 듣기 위해 터널을 네 번이나 왕복하는 남매의 이야기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화자의 큰누나는 암에 걸린 엄마를 모시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 새로 장만한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엄마는 자신의 몸집보다 큰 옷 짐을 가져온다. 버리자는 누나의 말에 눈물까지 비치며 아쉬워하던 엄마는 마지막으로 그 옷들을 한 번씩 입어본다.
 “큰누나는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엄마를 찍었다. LCD화면에 비친 엄마는 입는 옷에 따라서 삼십대였다가 오십대였다가 또 사십대가 되었다. 엄마에게는 당연했겠지만, 큰누나에게도 그 옷들 하나하나에는 추억들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그날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큰누나 역시 여중생이었다가, 지방 종합병원에 실습나간 간호대학생이었다가 여고생이었다가… 아무튼 두 사람은 그 겨우내 인생의 시간을 종횡무진 했다.”(149쪽)
 죽음을 앞둔 엄마와 엄마의 마지막을 곁에서 함께하는 화자의 큰누나는 추억 속, 옷을 입으며 지나온 인생을 다시금 살았다. 그 옷을 입은 엄마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누나의 그 행위는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서로를 향한 애틋함을 위로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김 작가는 이 책 속 11편의 단편을 통해 지나온 시간이 우리를 위로하는 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추억 속 빗소리가, 옷들이, 잊고 있었던 꿈이 우리에게 건내는 위로의 말은 상상 이상의 큰 힘이 지니고 있었다.
 올 한해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떠나야 했던 모든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열한편의 이야기.
 그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팸 이모가 듣지 못한 12월의 `시’음을 내는 빗소리를 듣기를 기대한다.

 문학동네. 341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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