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에 비친 자신의 아픔과 마주하다
  • 이경관기자
타인의 삶에 비친 자신의 아픔과 마주하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3.1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벨기에 브뤼쎌의 풍경 속 탈북자 삶 독특하게 담아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는 것인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48쪽)
 조해진 작가가 2011년 펴낸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나’의 이야기다.
 조 작가는 2008년 폴란드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어느 날 탈북자들이 벨기에를 떠돌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뒤 무작정 벨기에를 찾았다. 그 행위로부터 시작한 이 소설은 조 작가의 다각적인 취재를 통해 탈북자들의 생생한 생활상을 담았다.
 소외계층의 어려운 사연을 소개하고 ARS를 통해 후원을 받는 프로그램의 작가였던 `나’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종양이 악성으로 변해 한쪽 귀를 잃게 된 열일곱 소녀 윤주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된다.
 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탈북청년의 기사를 접한 뒤 그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도피하듯 벨기에로 떠난다.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7쪽)
 `나’가 접한 기사 속 이니셜 L로 명명된 로기완이라는 탈북청년은 어머니와 함께 탈북, 연길로 갔지만 그곳에서 어머니를 잃고 홀로 벨기에 브뤼쎌로 건너가 생사의 고비를 넘는다.
 `나’는 그가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브뤼쎌에서 로기완의 일기를 읽으며 그가 3년 전 묵었던 숙소를 찾아 머무르고 그가 먹었던 음식을 먹으며 일기 속 오롯이 담긴 그의 삶을 추체험 한다.
 “어떤 사람에겐 위로도 뜻대로 해줄 수 없다. 그 위로의 순간에 묵묵히 소비되는 자신의 값싼 동정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무엇으로도 치환되지 못한 감정은 이렇게 때때로 단 한번도 조우한적 없는 타인의 삶에서 재현되기도 한다.”(92쪽)
 작고 마른 체격을 지닌 로기완이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자신으로 인해 죽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로기완의 삶을 다시 살아보며 `나’는 어머니를 잃고 떠나야만 했던 무국적 이방인의 삶과 고통을, 또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사랑하는 아내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볼 수 없어 안락사를 도와야 했던 `박’의 아픔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나’는 타인의 아픔을 이해함과 동시에 자신의 아픔과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눈물까지 애틋함의 시선으로 완성하는 것, 언젠가 나는 재이에게 대본이든 대본이외의 글이든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되면 좋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116쪽)
 지난달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 작가는 이번 소설을 쓰며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해답, 아니 해답이 될 가능성이 있는 단어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녀가 찾은 해답의 실마리는 `위로’였다.
 `나’는 로기완과 박을 통해서 윤주에 대한 자신의 죄의식을 조금은 떨쳐낼 수 있었고 `박’은 나와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으며 로기완은 자신을 보듬어 주던 박과 자신과 닮은 삶을 살고 있던 여인 라이카를 통해 살아남아야만 했던 자신의 삶을 위로할 수 있었다.
 소설은 결국 삶의 근원적인 슬픔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연민과 유대를 통한 희망과 위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을 덮는 순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나의 마음을 가만히 독해해주겠다는 깊은 눈길을. 그 아릿한 마음과 함께 귓가에는 밥딜런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가 들려오지 않을까.
 창비. 198쪽. 1만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