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마르는 시간 동안 우리들의 상처도 아물겠지
  • 이경관기자
옷이 마르는 시간 동안 우리들의 상처도 아물겠지
  • 이경관기자
  • 승인 201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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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방이란 공간속 상처받은 다양한 인물들 극복과정 그려내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년 이맘때 노래방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김희진 작가의 장편소설 `옷의 시간들’은 이 노랫말처럼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대학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나는 심한 불면증으로 인해 2년간 만나온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가 떠난 뒤, 그가 가져 온 세탁기도 고장이 났고 나는 빨래를 하기 위해 빨래방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간 다음 날이면, 나는 가장 먼저 세탁기를 돌렸던 것 같다. 엄마가 암으로 죽었을 때도, 뒤이어 아빠가 술을 모르는 여자와 결혼을 했을 때도, 언니가 유부남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도 그랬다. 그들이 떠나고 없는 다음날 세탁기를 돌릴 때면, 세탁기 안에는 어김없이 떠나간 사람들의 옷가지가 남아 있었다. 어느 집이나 세탁기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기 전, 며칠간의 시간을 공유하기 때문이었다.” (8쪽)
 나는 빨래방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그곳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조금은 껄렁해 보이지만 정이 많고 아이처럼 소시지를 달고 사는 조미치, 한때는 대학교수였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거리를 떠돌고 있는 콧수염 아저씨, 회사를 운영하다 부도를 맞아 거리의 부랑자로 전락한 구도 아저씨, 그리고 9번 세탁기만 고집하며 늘 우울에 젖어있는 남자.
 나는 우연히 들른 편의점에서 콧수염 아저씨를 만나 컵라면 국물을 안주삼아 캔맥주를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나는 자신의 불면증으로 인해 떠나간 그에 대해 말하고 콧수염 아저씨는 나의 술친구가 되어준다.
 “이 세상에 영구적이고 불변하는건 하나도 없다는거 말일세. 삼라만상 모두 변해가지. 온 우주를 통틀어 낡고 변하지 않는건 하나도 없다네. 그러다 결국엔 모두 사라지고 말아. 근데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게 딱 하나 있다네. (…) 과거라네. 그래 그건 절대 변하지 않아. 그리고 변화시킬 수도 없지. 그러니까 과거에 얽매인채 살아가는건 아주 어리석은 짓이야. 과거의 인연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지. (…) 사람과 사람이 맺어가는 관계라는건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옷과 같다네. 옷은 결국 우리 곁을 떠나게 돼 있지. 작아지고 커져서, 혹은 낡아지고 닳아져서 떠나게 돼. 취향과 유행에 맞지 않아서도 떠나게 되고 말이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입을 수 있는 옷이란 없다네. 관계라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지.”(123쪽)
 나는 조미치와 9번 세탁기 남자의 슬픈 표정의 사연을 알아내기 위한 내기를 하고 그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아픔의 이유를 알게 된다.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 속에 홀로 남겨진 그에게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나는 그들과 소통하며 자신을 떠나야만 했던 모든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헤아려 보고 그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며 한 단계 성장한다.
 김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로 상처 받은 인물들이 빨래방이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만나 옷을 세탁하는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고 극복하는 과정을 특유의 재치와 발랄함으로 그려냈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매일 어떤 것과 혹은 누군가와 이별을 한다. 이런 게 삶이다. 어떤 것과 혹은 누군가의 이별이 남겨두고 간 그 빈자리를 꿰매주고 채워주는 건 시간일터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혹은 살아가게 될, 시간이 지배하는 세상인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285쪽)
 이 작품은 옷이 마르는 시간 동안, 자신의 아픔을 넘어 우리의 아픔을 보듬는 이야기다.
 한 해의 끝자락, 아쉬움 가득한 당신에게 이 소설 속 인물들이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다이조부, 다이조부. (…) 일본 말로 괜찮다는 뜻이래요.”(113쪽)
 자음과모음. 285쪽.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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