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슬픔과 마주할때 자신을 가두고 있던 밤은 진다
  • 이경관기자
내면의 슬픔과 마주할때 자신을 가두고 있던 밤은 진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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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첫 시집 발간... 그녀의 20대부터 40대까지 삶의 궤적 오롯이 녹아들어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 여덟 권의 소설 단행본을 출간한 소설가 한강이 지난해 11월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출간했다.
 한강은 치밀한 서사와 풍부한 상징으로 찬사를 받아온 등단 20년이 넘은 소설가이지만 사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이 실리면서 처음 문단에 데뷔했다. 그녀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흔들리는 20대를 거쳐, 30대를 지나 40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까지 그녀의 삶의 궤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이뤄져 있다.
 “거리 한가운데에서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았지/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36쪽,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부분)
 울다 지쳐 이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눈물은 다시 흘렀다. 화자는 생의 위태로움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과 닮아 있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19쪽, 마크 로스코와 나2 부분)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1970년 세상을 떠난 라트비아 출신의 화가 마크 로스코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녀는 영혼에 피가 있다는 표현을 통해 그와 마주할 수는 없지만, 그의 영혼과 소통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이 어스름한 저녁을 열고/ 세상의 뒤편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것이/ 등을 돌리고 있다 // 고요히 등을 돌린 뒷모습들이/ 차라리 나에겐 견딜 만해서/ 되도록 오래/ 여기 앉아 있고 싶은데// 빛이라곤/ 들어와 갇힌 빛뿐//  슬픔이라곤/ 이미 흘러나간 자국뿐// 조용한 내 눈에는/ 찔린 자국뿐// 피의 그림자뿐// 흐르는 족족// 재가 되는/ 검은”(58쪽, 피 흐르는 눈4 전문) 
 시집을 아우르고 있는 상실과 슬픔의 정조는 늦은 밤과 새벽을 배경으로 더욱 짙고 깊게 나타난다. 그녀의 시는 소설 속 인물들의 독백과 같았다. 고통에 짓눌린 인물들의 포효는 절규를 넘어 영혼의 부서짐으로까지 전이됐다.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80쪽, 회복기의 노래 전문)
 그러나 한강은 깊은 상실의 슬픔을 스스로 담금질해 회복하고자 했다. 그녀는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지만 극복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슬픔, 그 자체에 녹아들었다. 그녀가 선택한 침묵 속의 회복은 더뎠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시집의 해설을 쓴 조연정 문학평론가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마치 태양을 쏘아보듯 형형한 눈빛을 드러내 보이던 인물들도, 꿈속의 이미지에 몰입하던 인물들도, 그리고 침묵의 그림과 마주한 채 천천히 붓질을 하던 인물들도 모두 시인 한강의 페르소나였을 것이다.”(163쪽)라고 썼다.
 시집을 통해 한강은 말하고 있다.
 공허 속에 홀로 존재하는 나를 발견한 순간, 서랍 속에 켜켜이 넣어둔, 내면과 마주하라고. 그 내면과 마주할 때 비로소 자신을 가두고 있던 밤은 지고, 여명이 밝아 올 것이라고. 문학과지성사. 165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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