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랑한 도시, 단편소설로 만난다
  • 이경관기자
그들이 사랑한 도시, 단편소설로 만난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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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등 세계도시 배경으로 중견부터 신진작가까지 소설가 7명이 쓴 여행소설집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돌아가는 것’과 `떠나는 것’이 이토록 다르다면 그것은 서울과 뉴욕 사이에 생긴 14시간의 시차만큼 돌연한 것이었을 것이다.”(85쪽)
 여행소설집 `도시와 나’는 소설가 7명이 뉴욕, 브장송, 튀니스 등 세계 도시를 배경으로 쓴 단편소설집이다.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이 책은 여행 에세이가 아닌 소설집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부터 신진작가까지 그들이 사랑한 도시와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은 이국적인 배경만큼이나 개성 넘친다.
 성석제는 단편 `사냥꾼의 지도-프로방스의 자전거 여행’을 통해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서 자전거 여행에 나서는 희곡작가의 여정을 담았다.
 백영옥은 뉴욕을 배경으로 유부남을 사랑하는 나의 심리를 담은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이라는 단편을 썼다.
 정미경은 단편 `장마’를 통해 도쿄와 나오시마 섬을 배경으로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녀가 나오시마까지 동행하면서 소통하는 과정을 담았다. 상처를 가득 머금은 듯한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남자는 도쿄의 맛집을 안내하고 그녀와 함께 공연 `부토’를 본다.
 “처음 그걸 보던 날, 바깥으로 나와 아직 환한 거리에 서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슥 지나가데요. 아, 나란 인간은 그림자가 없구나.”(105쪽)
 함정임은 단편 `어떤 여름’에서 니스 행 열차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가 함께 프랑스 여러 도시의 호텔을 순례하는 여정을 담았다.
 “시원한 로제 와인을 주문해 마시면서 한여름 밤 춤추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육중한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박수를 치고 환호하고 있지만, 야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어쩌면 무덤과 같은 권태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여름 한철 반짝 하고 깨어나는 이 도시처럼 그들의 삶도 한여름 밤 어두운 공원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무도의 순간으로 생기를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133쪽)
 건축 의뢰인과의 미팅을 위해 니스를 찾은 그는 우연히 열차에서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고 있는 동양인 여자에게 끌렸다.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그는 수첩에 적힌 호텔을 순례한다는 그녀의 말에 자신이 함께 동행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함정임은 이 소설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낯선 공간이 주는 쓸쓸함에 빠진 남녀의 로맨스를 그리는 대신, 함께 걷고 소통하며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인간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
 “지난여름 열흘간, 수첩에 적힌 대로 프랑스의 호텔들을 순례했다. 강지섭이 십 년 전 그 호텔들에 묵었던 이유 따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머물렀던 십 년 전이라는 시공간은 나에게 화석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충분했다. 다행이라면 십 년 전의 그 호텔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강지섭의 붉은 수첩은 비행기를 타기 직전 공항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 속에 장 메이에라는 남자의 명함도 들어있었다. 그렇게 여름은 지나갔다.”(146쪽)
 두 남녀가 함께한 여름은 아련하고 아름다웠다. 여행을 마쳤을 때, 비로소 여행의 기억은 추억으로 자리한다.
 함정임은 소설을 통해 말한다. 혹독한 상처를 경험했을 때, 물리적인 거리가 심리적인 치유 기능을 한다는 것을.
 윤고은은 단편 `콜럼버스의 뼈’를 통해 세비야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찾아다니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서진은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꿈을 찾아 떠나왔지만 고국을 그리워 하는 젊은 세대의 방황을 단편 `캘리포니아 드리밍’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한은형은 단편 `붉은 펠트 모자’를 통해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하는 튀니스의 모습을 한 간부의 삶을 통해 그리고 있다.
 여행소설집 `도시와 나’는 7명의 작가가 전하는 낯선 여행 속에서 그 도시의 정보가 아닌, 마음을 흔드는 문장과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유를 전하고 있다.
 한편 올 봄 부산과 광주, 여수 등을 배경으로 한 `도시와 나’의 국내편이 출판될 예정으로 독자들에게 국내 여러 도시의 아름다움을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바람. 274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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