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덩이의 국수 반죽에 가슴 속 응어리 풀어내다
  • 이경관기자
한덩이의 국수 반죽에 가슴 속 응어리 풀어내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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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 투박한 국수 통해 그려내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숨을 쉰다. 살아있음 증명하기 위해서. 들숨과 날숨을 토해낸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짧지만 깊은 공백은 삶의 상처처럼 아릿하다.
 소설가 김숨은 그 들숨과 날숨의 공백을 나직이 이끌어 우리 이웃들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한다.
 지난해 현대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한 소설가 김숨이 최근 새 소설집 `국수’를 펴냈다. `국수’는 크게 가족을 얼개로 다양한 가족 관계의 결핍과 균열에 대해 이야기 한다.
 “손님처럼 마루 한쪽에 옹송그리고 앉아 밀가루 반죽을 이겨대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손바닥 안의 손금이 다 닳아지지나 않을까 염려될 만큼 반죽을 꾹꾹 눌러대던 꾹꾹… 당신이 반죽에 몰래 섞어 넣어 그렇게 꾹 누르고 눌러야만 했던 것…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53쪽)
 표제작 `국수’는 새어머니를 부정했던 `나’가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소설 전반은 `나’가 혀에 암이 퍼져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새어머니를 위해 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다. 국수는 그녀가 나의 집에 처음 왔던 날 만들었던 음식이었다. 나는 오도카니 홀로 앉아 국수를 만들던 마흔 셋의 그녀를 떠올렸다.
 아이를 낳지 못해 전남편에게 쫓겨난 새어머니는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채 아버지와 오랜 세월을 함께 살며 사남매를 친자식처럼 보듬는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일흔 두 살이, 나는 마흔네 살이 됐다. 30여년을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함께 산 나와 새어머니는 사랑과 미움, 그 모두를 품게 됐다.
 “반죽에 찰기가 불어서인지, 한덩이의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응어리를 주무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단단하고 차지게 맺힌 응어리와 한바탕 씨름이라도 하는 듯해요. (…) 그런데요… 글쎄 이놈의 응어리와 달리 말이에요, 제 안에서는 뭔가가 풀리는 것만 같아요. 이놈의 응어리처럼 뭉치고 맺힌 뭔가가… 응어리라고밖에는 별달리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그 뭔가가 부드럽게… 반죽의 시간이 당신에게는 혹 가슴속 응어리를 달래고 푸는 시간이 아니었을까요.”(61쪽)
 나는 성장하며 그녀를 부정했지만 어느덧 나에게 그녀는 엄마라는 존재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강한 생명력과 모성애를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첫 직장에서 해고됐을 때 어렵게 가진 아이를 유산했을 때, 그녀의 그 투박한 국수가 먹고 싶었다.
 소설의 마지막, 나는 그녀에게 국수를 만들어 내밀지만, 그녀는 통증 때문에 쉽게 먹지 못한다. 그런 그녀를 위해 나는 열넷의 나가 그랬던 것처럼 숟가락으로 국수의 면발은 뚝뚝 끊어낸다. 그녀가 국수를 먹을 수 있도록.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이 만들었던 음식과 그 맛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따뜻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김 작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투박한 국수를 통해 새어머니의 아픔과 나의 아픔, 그리고 나와 그녀의 화해와 소통 모두를 버무렸다.
 또 다른 수록작 `옥천가는 날’은 자매가 이미 세상을 떠난 엄마와 함께 응급차를 타고 장례가 치러질 엄마의 고향 옥천으로 가는 과정을 담았다.
 “어머니의 얼굴 위에서 머뭇거리던 그녀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새가 막 날아간 나뭇가지처럼.”(104쪽)
 또한 남편이 날려버린 재산을 시아버지가 돌려달라고 할까봐 불안해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담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가족이라곤 죽은 부인이 주워온 개 한 마리뿐인 노인이 개의 온기에 기대어 혹한의 밤의 견디는 이야기를 담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한 부자관계를 집단 살육의 현장과 연결시켜 표현한 `구덩이’와 현대인들의 불안과 망상을 치밀하게 묘사한 `대기자들’이 있다.
 이밖에도 부부의 갈등을 사회적 층위와 연결, 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한 `막차’와 `명당을 찾아서’, `그 밤의 경숙’ 등이 수록돼 있다.
 작가가 토해내는 현실은 비릿하다. 그러나 그 비릿함은 가족을 통해 회복된다. 질긴 생명력을 지닌 가족, 들숨과 날숨의 그 공백마저 메우는 가족이라는 이름은 새벽녘 밝아오는 여명만큼이나 시리고 따뜻하다.
 창비. 369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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