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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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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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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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 선생님께 갖다 드려라.” 아버지 손엔 새해 캘린더가 들려 있었다. 달력 한 부가 훌륭한 새해 선물 반열에 오르던 시절이었다. 신바람이 나서 대문을 나서는 나를 아버지는 다시 불러들이셨다. “이것도….” 정종 한 병이었다. 선생님이 애주가임을 뒤늦게 생각해내신 모양이었다. 큰 술병을 품에 안은 채 거친 시골길에서 행여 넘어질세라 새색시 걸음을 해야 했다. 50여년전 이야기다.
 그 10여년 뒤 제대복을 입은 채 고향에 들를 일이 생겼다. 집에 돌아 갈 기차삯만 남기고 과일 바구니를 사들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오래전 다른 곳으로 옮겨 가셨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고개 떨구고 돌아서는 눈앞에 땅만 바라본 채 회초리를 때리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어른 거렸다.
 어제 지역신문들이 학교 촌지와 찬조금 근절 문제를 일제히 다뤘다. 기사를 대각선으로 훑어보다시피 했다. 속독술(速讀術) 비슷한 재주라도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해마다 불거져 나오는 문제이니 꼼꼼히 안읽어도 알만한 내용이다 싶어서였다.어느 개그맨의 익살대로 `대~충’ 읽었어도 짐작이 그르지는 않았다.
 어느 언론계 선배가 현역시절 이런 `촌지론(寸志論)’을 편 일이 있다.“한 치〔寸〕는 한 자〔尺〕의 10분의 1,미터법으로 환산하면 길이 30303㎝다.거무튀튀하거나 칙칙한 마음, 낯 찌푸려가며 구겨넣은 마음이 아닌 「곱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담긴 길이 3.0303㎝짜리 뜻의 표시」가 바로 촌지다.”그러면서 그는 촌(寸)의 10배인 「척지(尺志)」,척의 10배인 「장지(丈志)」이야기를 하고는  촌지와 뇌물의 분별론도 폈다.
 자료를 찾는 눈에 이런 글이 눈에 띄었다.“누가/한 아름 선물을 놓고 갔다./거뭇한 울타리에 걸린/노란 개나리꽃 무더기.” 개나리 한 무더기, 캘린더 한 부로 마음을 주고 받던 시절은 다시 안오려나. 갈수록 탁류만 거세지는 세상이다.핀잔들을 소리나 한 것은 아닌지…. 
 김용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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