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시작과 끝… 그 모든 시간에 詩가 존재한다
  • 이경관기자
존재의 시작과 끝… 그 모든 시간에 詩가 존재한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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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사탕들 - 이영주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148쪽 l 8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내가 문을 닫을 때 그는 유리창을 연다/결핍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떠나야 해// 아프리카에는 새의 눈물을 닦아주는 나방이 있다고 한다// 어두운 땅에서는 비가 오고/ 모든 화학식이 뒤바뀐다// 죽으러 이런 곳에 다시는 오지 마// 우리는 진흙탕에 손을 넣는다/두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신다// 자기 목소리 바깥으로 가자”(`여름’ 전문)
 삶과 죽음, 그 멀고 먼 간극을 잇는 `외로움’이라는 것. 시(詩)의 탄생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올해로 등단 15년차를 맞는 이영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차가운 사탕들’. 이 시집은 존재의 비밀과 시 탄생의 비밀을 일치시키려는 낯선 언어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시인은 시단에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시적 유희를 그려내고 파편적인 풍경들을 나열해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든다는 평을 받고 있다.
 “태어나는 순간에는 왜 나를 볼 수 없을까/미래 밖에서 우리는 공을 굴린다//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안쪽에 숨겨져 있다./아픈 사람의 손바닥은 늘 빨개// 뜨거운 물속에 잠기면/공처럼 둥글어진다.// 방문을 열고 천천히 마당으로 간다./까마귀의 붉은 속살이 목련 나무 아래 솟아 있다.// 새벽을 지나 앞발로 공을 굴리는 고양이/태어나면서부터 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색깔을 가졌을지도 몰라// 모호한 시작 때문에 처음과 끝을 굴리는 우리는” (`둥글게 둥글게’ 전문)
 탄생의 순간은 항상, 타인에 의해 기억된다. 그러나 그 탄생을 기억하는 타자 역시 넓고 넓은 우주의 티끌일 뿐이어서 결국 인간 탄생의 순간은 결코 쉬이 풀리지 않는 숙제로 자리한다.
 시인은 시 `둥글게 둥글게’를 통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어떤 시점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이 시의 `미래 밖’은 미래와 과거가 원을 이뤄 순환하는 시간의 어떤 지점이다. 그것은 과거 밖의 까마득한 과거이고 미래 밖의 까마득한 미래이다. 그 순간 태어나는 `나’는 생물학적 개인인 아닌, 물질의 입자가 최초로 얻게 되는 생명의 생명, 그 자체이다. 최초의 생명, 그 순결한 빛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아픈 사람의 손바닥은 늘 빨갛다’라는 문장으로, 인간은 고통을 통해 감춰진 그 빛깔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상처는 존재가 자신을 보는 창이다. 무수한 상처를 통해 존재는 성숙한다. 그렇게 성숙하고 또 성숙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오늘은 이 잠이 마지막입니다. 차가운 돌 위를 떠나 안으로 들어갈 날을 하루 앞두고 있네요. 돌을 깨고 돌가루를 먹는 석공들은 느낌으로 안다고 합니다. 병자의 마음을 (…) 돌을 깨고 나면 우리의 생태는 죽은 살덩이로 남아 있습니다. 미끈한 돌이 완성되고 벼랑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애인을 만나려고.”(`석공들의 뜰’ 부분)
 죽음의 순간 역시, 타인에 의해 기억된다. 이 시의 화자는 돌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임종 직전의 사람이다. 시에서 `돌’은 차갑게 굳어져 가는 그의 몸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인간의 허약한 생명은 죽음을 통해 얼마나 단단해 지는가’에 대해 묻는다. 죽음은 생명의 유기체를 돌이킬 수 없이 해체하지만, 이 과정은 탄생의 순간 잃어버린 순결함에 대한 회복을 의미한다.
 “내가 핥아줄 수 있는 것은 등뼈./바람이 오면/ 공중이라는 짐승 한 마리가 내 혀를 자른다/말없이/피곤하면 슬퍼지고/붉은 살덩이 같은 심정./자기학은 왜 희랍어로 되어 있을까./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꽉 쥐어야만 하는 일의 긴 노역./입을 벌리면/바람이 올 때/공중이 될 수 있나./너의 등을 떠날 수 있나./옛 짐승들은 공처럼 바람 속을 뒹굴었다고 한다./유랑을 하기 위해서는/바람을 이겨내야 한다./뼈가 둥글어져야 한다.”(`고양이’ 전문)
 시인은 존재의 외로움을 시(詩)로 연결한다. 시 `고양이’는 시 쓰기의 노역을 은유한 시다. 시인의 자기해체는 시에 속성에 대해 노래한 `메타 시’에서 극명히 나타난다.
 `나’라고 하는 고양이가 또 다른 고양이의 등뼈를 핥는다. `바람이 오면’의 `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이면서 동시에 그 효과를 뜻한다. 효과는 바람과 같이 사려져 `공중’에 자리하고 `혀’는 자극을 받았지만 곧바로 언어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세계의 끝,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시인은 그 모든 절망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향해 자기만의 방식인, 시 쓰기를 통해 분투한다.
 존재의 시작과 끝, 그 모든 시간에 시(詩)는 머문다. 바람이 분다. 풍경이 인다. 모든 순간, 우리가 있다. 삶은, 시(詩)다.
 이영주. 문학과지성사. 148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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