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내가 문을 닫을 때 그는 유리창을 연다/결핍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떠나야 해// 아프리카에는 새의 눈물을 닦아주는 나방이 있다고 한다// 어두운 땅에서는 비가 오고/ 모든 화학식이 뒤바뀐다// 죽으러 이런 곳에 다시는 오지 마// 우리는 진흙탕에 손을 넣는다/두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신다// 자기 목소리 바깥으로 가자”(`여름’ 전문)
삶과 죽음, 그 멀고 먼 간극을 잇는 `외로움’이라는 것. 시(詩)의 탄생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올해로 등단 15년차를 맞는 이영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차가운 사탕들’. 이 시집은 존재의 비밀과 시 탄생의 비밀을 일치시키려는 낯선 언어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시인은 시단에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시적 유희를 그려내고 파편적인 풍경들을 나열해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든다는 평을 받고 있다.
“태어나는 순간에는 왜 나를 볼 수 없을까/미래 밖에서 우리는 공을 굴린다//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안쪽에 숨겨져 있다./아픈 사람의 손바닥은 늘 빨개// 뜨거운 물속에 잠기면/공처럼 둥글어진다.// 방문을 열고 천천히 마당으로 간다./까마귀의 붉은 속살이 목련 나무 아래 솟아 있다.// 새벽을 지나 앞발로 공을 굴리는 고양이/태어나면서부터 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색깔을 가졌을지도 몰라// 모호한 시작 때문에 처음과 끝을 굴리는 우리는” (`둥글게 둥글게’ 전문)
탄생의 순간은 항상, 타인에 의해 기억된다. 그러나 그 탄생을 기억하는 타자 역시 넓고 넓은 우주의 티끌일 뿐이어서 결국 인간 탄생의 순간은 결코 쉬이 풀리지 않는 숙제로 자리한다.
시인은 시 `둥글게 둥글게’를 통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어떤 시점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이 시의 `미래 밖’은 미래와 과거가 원을 이뤄 순환하는 시간의 어떤 지점이다. 그것은 과거 밖의 까마득한 과거이고 미래 밖의 까마득한 미래이다. 그 순간 태어나는 `나’는 생물학적 개인인 아닌, 물질의 입자가 최초로 얻게 되는 생명의 생명, 그 자체이다. 최초의 생명, 그 순결한 빛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아픈 사람의 손바닥은 늘 빨갛다’라는 문장으로, 인간은 고통을 통해 감춰진 그 빛깔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상처는 존재가 자신을 보는 창이다. 무수한 상처를 통해 존재는 성숙한다. 그렇게 성숙하고 또 성숙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죽음의 순간 역시, 타인에 의해 기억된다. 이 시의 화자는 돌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임종 직전의 사람이다. 시에서 `돌’은 차갑게 굳어져 가는 그의 몸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인간의 허약한 생명은 죽음을 통해 얼마나 단단해 지는가’에 대해 묻는다. 죽음은 생명의 유기체를 돌이킬 수 없이 해체하지만, 이 과정은 탄생의 순간 잃어버린 순결함에 대한 회복을 의미한다.
“내가 핥아줄 수 있는 것은 등뼈./바람이 오면/ 공중이라는 짐승 한 마리가 내 혀를 자른다/말없이/피곤하면 슬퍼지고/붉은 살덩이 같은 심정./자기학은 왜 희랍어로 되어 있을까./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꽉 쥐어야만 하는 일의 긴 노역./입을 벌리면/바람이 올 때/공중이 될 수 있나./너의 등을 떠날 수 있나./옛 짐승들은 공처럼 바람 속을 뒹굴었다고 한다./유랑을 하기 위해서는/바람을 이겨내야 한다./뼈가 둥글어져야 한다.”(`고양이’ 전문)
시인은 존재의 외로움을 시(詩)로 연결한다. 시 `고양이’는 시 쓰기의 노역을 은유한 시다. 시인의 자기해체는 시에 속성에 대해 노래한 `메타 시’에서 극명히 나타난다.
`나’라고 하는 고양이가 또 다른 고양이의 등뼈를 핥는다. `바람이 오면’의 `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이면서 동시에 그 효과를 뜻한다. 효과는 바람과 같이 사려져 `공중’에 자리하고 `혀’는 자극을 받았지만 곧바로 언어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세계의 끝,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시인은 그 모든 절망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향해 자기만의 방식인, 시 쓰기를 통해 분투한다.
존재의 시작과 끝, 그 모든 시간에 시(詩)는 머문다. 바람이 분다. 풍경이 인다. 모든 순간, 우리가 있다. 삶은, 시(詩)다.
이영주. 문학과지성사. 148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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