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의 유쾌한 일상 통해 인도사회 정곡 찌르다
  • 이경관기자
한 가족의 유쾌한 일상 통해 인도사회 정곡 찌르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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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 - 카란 마하잔 지음 l 문학동네 l 303쪽 l 1만35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그는 아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은 그의 문제들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 뿐이다. 그는 몹시 불편한 느낌이 들면 인파 속에 자신을 던져놓고 사람들의 스쳐 지나가는 눈길이 스프링클러에서 나오는 물처럼 자신을 깨끗하게 씻겨주는 느낌을 받고 싶은 충동을 가장 먼저 느낀다.” (18쪽)
 아버지가 달린다. 아들이 달린다. 나란히 달리던 그들의 사이가 어느덧 저만치 멀어졌다.
 인도계 작가 `카란 마하잔’의 장편소설 `가족계획’은 인도 뉴델리를 배경으로 장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다.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작가는 이 작품으로 조지프 헨리 잭슨 상 수상, 딜런 토머스 상 최종 후보 등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소설은 크게 인도 도시개발부 장관 아후자와 그의 열세명의 자녀 중 맏이인 사춘기 소년 아르준과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인도의 정치사와 개인의 가족사가 미세하게 얽혀있다.
 특히 이 소설은 인도 사회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 짙은 풍자가 더해져 유머러스하다.
 “아버지, 전 정말 이해가 안돼요. 왜 아버지와 어머니는 계속 아기를 갖는 거죠?”(10쪽)
 소설은 자고 있는 어린 동생들 사이에서 사랑을 나누는 부모님의 모습을 목격한 열여섯 장남 아르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르준의 친구들은 아르준을 `찢어진 콘돔’이라고 놀리고 아버지를 `이 나라의 아버지’라고 놀린다. 아르준은 자꾸만 아이를 만들어 대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에게 대든 후 뒤숭숭한 아르준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짝사랑하는 소녀 아르티가 스쿨버스 옆자리에 앉은 것. 아르준은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록 밴드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녀에게 한 말을 지키기 위해 아르준은 친구 3명을 모아 밴드를 만든다. 그 이름은 `고가도로의 친구들’. 

 “아이들은 그가 정치계에 남아 있는 이유였다. 아이들은 그의 부패를 정화해주었고 그의 카리스마를 확인해주었다. 아직 너무 어려서 말의 속임수를 못 배운 아이들, 말을 전혀 몰라 그의 사교적인 문장에 속아 넘어갈 수조차 없는 아이들까지도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주었다.” (131쪽)
 장남 아르준에게 부인과의 정사장면을 들킨 후 아후자는 아들과의 관계가 불편했다. 그렇다고 사춘기인 아들에게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난감한 상황이다.
 도시개발부 장관인 그는 여당 최고 권력자의 총애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동료 정치인들의 시샘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게다가 정치적 라이벌인 요그라지가 그가 반대할 만한 법안을 제출,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이런 상황을 속에서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길 기대하며 사직서를 제출한다.
 “그들은 차에서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는 무척 목이 말랐다. 침대에 드러누우면 뒤따라 갈증이 찾아올 때처럼, 우리 몸은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 즉 엄청난 무질서를 향해 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한밤중에 피로를 느끼며 일어나 물컵을 집어들고 물 한 모금을 들이켜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편안히 잠을 이루지도 못한다. 그저 침대에 가지고 들어온 불안의 찌꺼기가 없어지는 정도다.” (216쪽)
 소설 속 인물들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얽히고설켰다. 첫사랑이었던 첫 번째 아내를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잃은 아후자. 못생긴 외모로 평생 홀로 살줄만 알았으나 예쁜 여동생 덕분에 사기 결혼에 성공한 아후자의 두 번째 아내 산기타. 산기타를 친모로 알고 자란 아르준. 아르준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고자 몇 년간을 벼른 아버지 아후자. 이들의 관계가 아후자의 정치인생, 아르준의 짝사랑과 연결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무뚝뚝하고 침울한 표정을 짓자 온 세상이 거기에 짓눌렸다.” (202쪽)
 소통이 단절된 아버지와 아들. 자신의 업적 쌓기에 급급한 정치인.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갈등은 우리 현실과 닮았다. 그 때문에 작가의 유머가 그저 웃기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로 델리가 폐허와 유적의 도시라면 그가 남긴 폐허는 적어도 다른 것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할 것이다.”(257쪽)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 뉴델리, 그 무질서한 풍경 속에서 벌어지는 한 가족의 일상은 따뜻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다.
 아비가 달린다. 아비의 그림자를 밟으며 아들이 달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생이라는 기나긴 달리기 속, 나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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