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따돌림·가난… 슬프고 아련한 청춘의 분노·절망
  • 이경관기자
집단 따돌림·가난… 슬프고 아련한 청춘의 분노·절망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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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b책 - 김사과 지음 l 창비 l 167쪽 l 9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어른들은 하늘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어른들은 구름과 별, 그리고 갈매기와 바다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28쪽)
 사회의 반복된 부조리가 가져온 분노가 곪아터졌다. 꿈을 펼쳐보지 못한 청춘이 폭력에 의해 으스러졌다. 선임병들의 구타와 만행으로 사망한 28사단 윤일병 사건은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한강의 기적.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국민 소득은 높아졌지만, 행복도는 높지 않다. 경제의 논리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세월호를, 윤일병을 불러왔다.
 “시간은 전혀 흘러가는 것 같지 않았고 그래서 마치 미지근한 웅덩이 같았다. 닫힌 방 안의 공기처럼 모든 게 조용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게 나의 세계였다. 난 그게 좋았다”(25쪽)
 한국문단의 `무서운 아이’ 김사과 작가의 청소년 소설 `나b책’은 학교폭력에 노출된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유 없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나’와 그런 나의 유일한 친구 `b’, 그리고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책’이 등장한다. 이들은 경제의 논리와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 내쳐진 인생들이다.
 이 소설은 청소년기의 분노와 절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집단 따돌림과 가난, 그리고 외로움에 방치된 주인공들의 삶은 암담하다. 작가는 그들의 처참한 현실을 `나’의 시선으로 서늘하게 그렸다.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을, 그러니까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그냥 파도처럼 흔들렸고, 또 흔들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14쪽)
 바닷가 지방 소도시에 사는 `나’는 이유없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워싱턴 모자와 그 친구들은 운동장 한 가운데서 나를 마구 구타한다. 지나치는 선생님과 친구들은 이들의 폭력을 묵인한다. 나는 매일 반복되는 그들의 폭력이, 그 폭력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내야 하는 자신의 현실이 싫다. 그러나 그 폭력 속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친구 `b’가 있어 나는 버틸 수 있었다.
 “멋진 꿈은 비싸다. 그래서 내가 꿈을 가질 수 없는 거다.”(87쪽)
 `b’는 아픈 동생과 가난한 집을 가졌다. b는 마음껏 꿈도 꿀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이 싫었고, 낳지 않는 동생의 병도 싫었으며 돈벌이에 매달려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부모님도 싫었다. b는 가난한 집도 아픈 동생도 없는 자유로운 바다 속 물고기가 되기를 꿈꿨다.
 친구들의 폭력과 선생님의 무관심에 노출된 `나’와 가난과 부모님의 무관심에 방치된 `b’는 서로를 다독이며 지냈다. 위태로운 그들의 삶, 서로는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창구였다. 

 “랑이 학교에 안 나오자 야구부 애들은 심심해졌다. 아니 다른 애들도 좀 심심해졌다. 그런 얼굴들을 하고 있다. 그러니 새로운 랑을 필요로 하는 건 우리 모두였다. 아이들에게 가장 나쁜 일은 지루한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발로 차 죽이는 것보다도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랑을 기다렸고 그건 너무 쉽게 구해졌다. 그건 바로 나였다.”(93쪽)
 어느날 `나’의 잘못으로 `b’는 나와 절교를 선언하고 나를 괴롭히던 워싱턴 모자 무리들과 어울린다. 그들은 겉으로 친구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워싱턴모자는 b에게 모자와 라면을 사줬지만 b는 그 댓가로 워싱턴 모자가 자신의 가슴과 몸을 더듬는 것을 허락해야 했다. 결국 b는 워싱턴 모자에게 화를 내고 그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나를 대신해 b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더 이상은, 더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뭔가 부드러운 것이 내 몸에 닿았다. 그리고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희미한 빛이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나는 물 위로 떠올랐다. 난 눈을 떴다. 거기 b의 얼굴이 있었다. 백이십 퍼센트. 기적이 이루어졌다.”(117쪽)
 `나’는 친구들의 괴롭힘에 못 이겨 자살을 결심, 바다에 뛰어든다.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기적처럼 `b’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었다. 홀딱 젖은 둘은 덜덜 떨며 슈퍼집 할머니가 주는 따뜻한 보리차를 마신다.
 “반쯤 열린 문 너머로 꿈같은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그건 노을이었다. 나는 한 손에 컵라면을 든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 붉게 물든 하늘은 마치 홍차로 된 바다 같았다. 예쁘다. 나는 말했다.”(58쪽)
 둘은 `책’의 집에서 며칠간 머문다. 말없이 책만 읽던 `책’은 그들이 아는 평범한 어른들과 달랐다. 책은 살갑진 않았지만 그들의 외로움을 다독여주었다. 괜찮다는 말 대신,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바다를 붉게 물들인 노을을 함께 바라봐 주었다. 나와 b, 그리고 책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 보았다. 아픔을 함께한 이들의 연대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희미하지만 꺼지지 않는 불빛과 같았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바다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계절이, 해가 바뀌었다. 모든 것이 같았다. 여름 다음은 가을이었고 겨울 다음은 여름이 아니었다. 결국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더 이상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은 어른이 되는 일뿐이었다.”(167쪽)
 소설 속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윤일병도 주변 사람들의 작은 관심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들의 폭력을 외면했던 선생의 모습은 윤일병의 사건을 묵인하고자 했던 군 간부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세상은 어쩌면 김 작가가 그린 세상보다 훨씬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존재했지만 `윤일병’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b’와 `책’.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직도 세상에는 선임병들의 폭력과 친구들의 폭력에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을 수많은 `윤일병’과 `나’가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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