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추억 속의 맛… 그 음식을 함께한 사람들
  • 이경관기자
행복했던 추억 속의 맛… 그 음식을 함께한 사람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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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요리사’박찬일 셰프가 전하는 음식 이야기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박찬일 지음 l 푸른숲 l 338쪽 l 1만2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녀석아, 올해는 장가를 가렴. 남에게 자랑 같은 건 할 줄 모르고, 싫어도 그만, 좋아도 그만인 숫보기에게 사랑이 들라고 다디단 병어를 쪘다.”(21쪽)
 추억은 맛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언제나처럼 밥이 있다. 함께 나눈 이야기, 그날의 분위기는 맛으로 기억된다. 함께한 끼니의 횟수만큼, 딱 그만큼 그 사람과 친밀해 진다.
 박찬일 셰프의 책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이 책은 삶의 일부로써의 음식, 기억으로써의 음식을 이야기 한다.
 “얼마 전, 어머니를 모시고 그 냉면집에 들렀다. 메밀 삶은 물에 예의 간장을 타서 드시면서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때는 이 집이 참 컸는데……. 너희들은 참 작았고…….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앞서 걸으시던 그 시절의 냉면집 골목길도 어머니의 치마폭도 참 넓었더란 생각이 들었다.”(43쪽)
 저자는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그리운 순간으로 데려간다. 유년시절 운동회 날이면 어머니가 들고 온 삼단 찬합 도시락, 머리가 복잡할 때 먹으러 가는 중국집 짜장면, 인생이 고단할 때면 떠오르는 아버지의 닭백숙 등 그가 이야기하는 음식들은 소박하지만, 추억에 대한 향수는 진하다.
 “비 오는 날 저녁 어스름에, 주택가 골목이나 추레한 상가의 복도에서 만나는 다 먹은 짜장면 그릇이다. 음식의 존엄은 사라지고, 칼로리만 존재하는 슬픈 풍경이다. 신문지라도 살포시 덮여 있으면 좀 나을까.”(30쪽)
 이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어려웠던 시절 그 여름을 날 수 있도록 도와줬던 수박화채를 비롯해 짜장면, 국수 등이 다양한 유년시절의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된다.

 또한 그 자체가 풍경이 돼 버린 남도의 한정식, 청어와 멸치, 꼬막, 고등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의 식도락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군침과 함께 떠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어려서 나의 작은누이는 일찍 회사에 취직했다. 대학 같은 건, 사치였다. 그 누이가 사환 노릇을 하며 지폐를 벌었다. 간혹, 나를 회사 근처로 불러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의 메뉴는 볶음밥이었다. (…) 누이는 꼭 내게만 볶음밥을 시켜주고 자기는 마치 ‘나는 속이 좋지 않다’던 어머니처럼, 그렇게 맨입으로 앉아 내 입에 밥숟갈이 들어가는 걸 흐뭇하게 들여다보곤 했다. 그래봤자, 그 누이의 나이 고작 스무 살 초입이었을 테다.”(217쪽)
 2부에는 저자가 이탈리아 유학 시절과 여행 중에 만난 이국적인 요리와 그 요리에 담긴 추억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달려가서 먹고 싶은 홍콩의 딤섬, 일본 샐러리맨의 애환이 깃든 라멘, 입이 터질 듯 한 햄버거 등 그가 전하는 음식 이야기에 매료된다.
 특히 요리사의 팔뚝이 만들어 낸 살아 있는 볶음밥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가 전하는 자신의 작은 누이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것은 70~80년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애쓴 우리 부모들의 이야기다.
 3부는 저자가 자신이 읽은 책에서 발견한 요리에 대해 이야기 한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비롯해 김훈의 ‘남한산성’ 등 다양한 소설과 함께 그려지는 음식의 향연은 맛깔스럽다.
 “당신 삶 앞에 놓인 강물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때로 혀가 진저리치게 신맛도 있어야 하고, 고통스러운 늪 같은 쓴맛도 결국은 인생의 밥을 짓는 데 다 필요한 법이 아닐까. 밥의 욕망, 밥에 대한 욕망, 그것이 우리를 살린다. (…)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먹고 합시다!”(11쪽)
 그가 전하는 맛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가장 행복한 순간, 그 음식을 함께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맛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 팍팍한 삶에 지쳐 술 한잔 하고플 때, 떠오르는 그 사람과 박찬일, 그의 글을 읽고 싶다. 그의 글과 맛에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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