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갖췄지만 사는 이유가 없었던 노인에게 찾아온 사랑
  • 이경관기자
모든 것 갖췄지만 사는 이유가 없었던 노인에게 찾아온 사랑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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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침묵의 질병 고독사 블랙유머로 무겁지 않게 다뤄

 

모나코
김기창 지음 l 민음사 l 216쪽 l 1만3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이른 아침은 노인들이 만드는 나라였다. 그들은 마법에 걸린 듯 조용했다. 이른 아침은 침묵의 나라이기도 했다.”(143쪽)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각종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 사회를 이끌었던 이들의 쓸쓸한 죽음, ‘고독사’ 역시 그 중의 하나다. 지난해 보고된 고독사만 1717건에 이른다.
 “노인은 이러나저러나 혼자인 세계의 멸망을 바라왔다. 세계의 멸망이 곧 나의 죽음이 되었으면 했다.”(23쪽)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김기창 작가의 장편소설 ‘모나코’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침묵의 질병인 고독사를 정면으로 다뤘다. 이 소설은 실존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개성적인 인물과 특유의 문체로 탁월하게 표현했다. 특히 한국문단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블랙유머를 구사하며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게 다뤘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언제부턴가 사는 것도 습관처럼 여겨졌다. 먹고, 자고, 걷고, 먹고, 걷고, 또 걷고. 어떤 날은 사는 이유를 생각해 냈다. 다음 날엔 또 잊어버렸다. 이제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먹는 것의, 사는 것의 의미는 조난당한 선원의 수영복처럼 부질없었다.”(25쪽)
 80대 중반의 ‘노인’은 은퇴한 사업가로 좋은 집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산다. 스스로 한식부터 이탈리아, 스페인 요리까지 해 먹을 만큼 취향도 고급스럽고 까다롭다. 그는 가까운 친구들과 아내의 죽음을 목도한 후, 매일 죽음을 기다리듯 무기력하게 산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그는 오로지 가사도우미 ‘덕’과만 소통하며 지낸다.
 “자신의 그런 행동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그 이유를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유는 미래가 있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이었다. 노망이 난 거라면 그것도 그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핑계 대기도 좋았다.”(60쪽)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유부남의 아이를 낳고 수녀원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젊은 미혼모 ‘진’을 좋아하게 된다. 처연한 슬픔이 베인 얼굴은 그를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녀와의 산책을 위해 가지 않아도 되는 마트를 가고, 수녀원 앞을 서성인다. 그는 그녀를 위해 요리를 하는 등 자신의 마음을 거침없이 그러나 과장되지 않게 표현한다. 그녀 역시 그의 그런 표현이 싫지는 않은 듯 행동한다.

 그와 그녀는 함께 아이를 씻기고 같이 영화를 보며 다정한 시간을 보내지만 다음날 그녀를 찾으러 그의 집에 온 아이 아빠의 ‘다행입니다’라는 말에 그는 자신과 진의 사이는 결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귀결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김 작가는 소설 속에서 노인을 ‘욕망과 사유의 주체’로 그렸다. 진을 원했지만 결코 그녀를 소유코자 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생의 끝자락에 선 한 남자의 덤덤한 고백이었다.
 “그가 지금껏 혼자인 것은 다른 사람들 탓이 아니다. 지금의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젊은 사람 중 관계의 시달림보다는 외로움을 택하는 사람이 있듯이 노인도 그럴 수 있다.”(65쪽)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는 노인과 진의 사이를 질투하는 덕의 모습이다. 진을 위해 요리를 하는 그를 보며 툴툴 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아빠의 새 여자 또는 내 남자의 또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닮았다.
 그를 살뜰히 챙기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의지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가족과 같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결코 자신의 곁을 내 주지 않는다. 평생을 치매 어머니를 모시며 고통 속에 살던 그녀에게 곧 세상을 떠날 자신까지 부담이 되긴 싫었던 것이다.
 “노인의 죽음은 어느 누구도 원망할 것 없는 죽음이었고 놀랄 것도 없는 죽음이었다.”(191쪽)
 아이 아빠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떠난 진과 노인이 보내준 여행에 나선 덕. 그는 덕이 여행을 떠난 뒤, 거실 창가에 앉아 일출을 보다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죽고 두 달간 그를 찾아온 사람은 물건을 훔치러 온 이들뿐이었다.
 김 작가는 돈과 명예 등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쓸쓸한 노인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또 외로움의 최후를 그렸다. 언제나 냉소적이었던 노인의 내면은, 결국 외면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의 죽음이 더욱 서글픈 것은, 언젠가는 그와 같은 나이가 돼 죽음을 맞이할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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