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마주하는 예술과 음식, 그 맛과 멋에 취하다
  • 이경관기자
여행에서 마주하는 예술과 음식, 그 맛과 멋에 취하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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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소설가 20여 년간 세계 떠돌며 문학·예술·음식 탐험한 결과물‘식도락 기행서’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
함정임 지음 l 푸르메 l 322쪽 l 1만58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내가 꿈꾸는 여행지들은 단테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불멸의 문학예술가가 나고 자라고 활동하고 죽어 묻혀 있는 공간들이다. 그들을 키워낸 하늘과 바람과 공기를 호흡하고, 그 아래 자라는 푸성귀와 열매를 맛보며, 그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문장으로, 또는 색이나 음으로 표현되는 원리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158쪽)
 을미년(乙未年)이 밝았다. 새해가 떠오르면 우리는 항상 올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고자 마음먹는다. 그러나 어느새 작심삼일로 끝나고 연말이 됐을 때는 후회뿐인 한 숨만 남는다.
 20년 이상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루 24시간 중 5시간 수면, 1년 12개월 중 1개월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원칙으로 일상에 임하면서 매순간 적금을 붓듯 마련한 시간으로 여행자로서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소설가 함정임.
 그녀가 20여 년 간 세계를 떠돌며 문학과 예술과 음식의 세계를 탐험해온 것의 결과물인 식도락 기행서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를 최근 출간했다.
 “새로움은 가장 오래된 것, 가장 깊은 것에서 비롯될 때 진정성을 갖는다. 체스키크롬로프가 새삼 나를 사로잡은 것은 과거의 유적지로 머물지 않고 에곤 실레라는 현대 예술가의 출발점으로 지금 이 순간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60쪽)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함 작가는 스무 살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를 읽다 시 말미의 결구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읽고 서른 살이 되기 전 오로지 스스로 힘으로 벌어 프랑스에 가고 말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기 전 파리에 다녀온 후 그녀는 여행자로서의 삶, 삶으로서의 여행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그녀는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책이라는 신념으로 매년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이 책에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카프카의 프라하, 예이츠의 아일랜드, 폴 오스터의 뉴욕, 헤밍웨이의 아바나 등 예술가의 혼이 담긴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프라하는 카프카 없이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프라하 자체였다. 그러나 과거의 유산 아래 현재의 표정을 살피는 일이란 후배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가능한 것. 지금 현재의 현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국을 떠나 끊임없이 두 체제 사이에서 소설을 매개로 서로를 비추어 보고 있는 밀란 쿤데라의 귀향담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46쪽)
 이 책이 다른 여행서와 달리 독특한 의미를 갖는 것은 여행과 함께 마주하는 예술과 음식이다. 그녀가 사랑한 문학가와 화가를 비롯해 지역의 특산물로 요리한 단 하나의 성찬은 우리를 매혹한다.  
 그녀는 카프카의 프라하에서 밀란 쿤데라를 반추하고 보헤미안의 에너자이저인 필스너 우르켈과 카흐나를 음미한다. 또 아바나에서 헤밍웨이의 음료 모히토를 마시며 그를 찾아 헤맨다. 더블린에서는 기네스 흑맥주에 여행의 고단함을 털고 제임스 조이스와 마주한다.
 “그 집, 수민이네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부산으로 내려와 처음 ‘방아’라는 한국산 향초와 바닷장어구이를 맛보았던 식당이었다. 또한, 크고 작은 원고 마감을 할 때면, 마감과 동시에 기다리고 있는 일상의 업무들을 신속하고도 힘차게 수행해야 할 때면, 또 먼 곳으로 씩씩하게 여행을 떠나거나 돌아올 때면, 언덕을 달려 내려가 380년 된 수호송(守護松) 옆에 희고 담백한 바닷장어구이로 탕진해버린 에너지와 잠시 마비된 일상의 리듬을 되찾곤 하는 곳이었다.”(315쪽)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부산 청사포가 담겨있다. 삶의 일부인 그곳에서 함 작가는 수 많은 소설 속 인물을 형상화하고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며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간다.
 철썩 철썩 밀려오는 시원한 파도와 나란히 선 두 개의 등대를 마주하고 방아향을 머금은 바닷장어를 알싸한 소주와 함께 맛보고 싶다.
 이 시대 진정한 노마드 소설가 함정임. 그녀가 들려주는 맛깔 나는 여행기, 그 맛과 멋에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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