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로에 선 아버지, 그와 함께한 아들의 기록
  • 이경관기자
마지막 여로에 선 아버지, 그와 함께한 아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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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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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출신 소설가 이상운씨 늙고 병든 아버지 곁 지키며 보낸 3년반 기록담은 에세이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이상운 지음 l 문학동네 l 253쪽 l 1만3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사랑하는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 부서져 가고 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이의 마음은 어떠할까.
 “인간의 마음이 사계절 날씨와 같다는 것을 아픈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더더욱 깨닫는다. 청명한 하늘, 봄바람, 비와 눈, 우박, 천둥, 돌풍, 소나기, 아름다운 설경, 낙엽이 깔린 아늑한 숲길, 따스한 가을볕과 마찬가지로, 우리 속에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공존하고 있다.”(203쪽)
 포항 출신의 소설가 이상운씨는,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 들어간 아버지의 곁은 지키며 보낸 3년 반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를 최근 펴냈다.
 이 책은 갑자기 발생한 고열로 급격히 허물어져 가는 아버지의 시간을 적나라하게 경험한 아들의 기록이다.
 “이 시대의 현대화한 병원은 대개 진료 과목별로 조각조각 나뉘어 있어서 의사들은 오로지 자기 분야에만 신경 쓴다. 아버지처럼 심신이 전체적으로 망가져가는 노인 환자의 경우는 그야말로 통합적인 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67쪽)
 그는 인생의 마지막 여로에 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그의 아버지는 노쇠한 몸 곳곳에 꽂히는 주삿바늘과 계속되는 검사에 지친다. 병원은 뚜렷한 답을 내려주지 못하고 아버지는 몸에 이어 정신까지 망가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자다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침대에서 떨어지는 등 과다행동을 한다. 아버지를 뒤덮은 이 이상증세는 일종의 정신과적 증세인 ‘섬망’으로 심한 과다행동, 생생한 환각, 초조함과 떨림 등이 자주 나타난다.
 그는 짧은 병원 생활을 통해 인간을 관리하고 길들여야 하는 존재로 여기는 차가운 의료 환경 속에 아버지를 둘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결국 아버지가 ‘당신의 집, 당신의 이부자리’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집으로 모셔 온다.
 그는 자신의 삶의 터전인 서울과 잠시 작별을 고하고 아버지가 계신 포항 본가로 내려와 고령의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돌본다.  

 그는 늙고 병든 사람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제도적 미흡함에 한탄한다. 그는 간병인을 고용해 편히 아버지를 모시고자 하지만 그것조차 만만찮다. 그는 아버지를 보살피러 오는 간병인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끼는 한편 때로는 너무나 사무적인 태도에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의 판단이지만, 고령화에 대한 제도적 대응이 느리고 충분치 못할뿐더러 사람들의 이해도 부족하고 공감도도 낮아 보인다. 제도는 고령화의 흐름을 겨우 뒤따라가며 느리게 대응하고 있고, 사람들의 인식과 감정상의 적응은 더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136쪽)
 그는 요도가 막혀 소변을 배출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눈과 귀가 하루하루 다르게 멀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인간의 사그러짐을 목도한다. 그는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현대사회의 외면에 더욱 씁쓸함을 느낀다.
 인간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까지도 잠식한 상업자본에 그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는 책 속에서 강조한다. 아버지와 같이 하루하루를 생을 정리하며 살아가는 고령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5일이면 끝나는 장례가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늙음과 죽음의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병든 초고령의 아버지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그 곁에서 동행하는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하지만 인생은 마지막에 나타날 결정타를 기다리는 여로가 아니다. 그 마지막 기다림조차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슬며시 사라져가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느끼며 깨달아가고 있다. 고도조차도 버려야 한다.”(231쪽)
 그는 아버지가 죽어가는 과정을 목도하며 죽음은 결국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담담한 그의 문장 속에 담긴 그 이별이 서글프다. 그러나 그 이별이 서글프지만은 않은 것은 그가 아버지의 곁에서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여로를 함께했음에 또 인간에 대해 오롯이 바라보고 고민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오는 20일은 24절기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이다. 쌀랑이는 바람에 몸을 한껏 웅크리지만 한 평생 자식을 위해 애썼던 아비를 기리며 쓴 그의 글이 있어 결코, 춥지 않다. 모든 부모와 또 언젠가 부모를 떠나보낼 자식들의 이야기. 이 책은 그들에게 보내는 단 하나의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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