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우리’인 동물들의 삶·죽음, 그리고 사람이야기
  • 이경관기자
또다른 ‘우리’인 동물들의 삶·죽음, 그리고 사람이야기
  • 이경관기자
  • 승인 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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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관심 가져온 동물 집대성… 인간과 다름없는 그들의 삶, 신선한 발상과 버무려 詩로 탄생

 

꼬리치는 당신
권혁웅 지음 l 마음산책 l 608쪽 l 1만55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사뿐사뿐, 우리 곁에 있던 수많은 동물들이 살며시 다가와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괜찮다. 다 괜찮다고.
 “남은 꼬리가 꿈틀대는 동안 도마뱀은 달아나지. 잘린 꼬리가 자라는 동안 도마뱀은 생식도 성장도 하지 않는다. 그이가 당신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고 아파하지 마시길. 당신이 그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동안 당신은 살아남은 거야. 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36쪽)
 시인의 동물감성사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권혁웅 시인의 ‘꼬리 치는 당신’. 이 책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온갖 동물부터 공룡, 도도새 등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진 동물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관심을 가져온 동물에 대해 집대성한 책이다.
 “반려동물과 조금만 살아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동물은 영혼 없는 우리가 아니다. 동물은 우리와 존재를 주고받는 다른 우리다. 그들도 우리도 똑같은 삶 앞에 있다. 그들도 울고 웃고 먹고 배설하고 죽음 앞에서 공포를 느끼고 불멸을 욕망한다.”(책을 내면서 중)
 권 시인이 밝혔듯 시인은 이 책 속에서 다뤄지는 많은 동물들을 또 하나의 우리로 생각한다. 그는 여러 매체에서 관찰한 동물들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삶과 죽음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다.
 “생쥐는 2년쯤 살고 1분에 550번 심장이 뛴다. 호랑이나 기린은 20년쯤 살고 1분에 60~100번쯤 뛴다. 평생 동안 기록하는 심장박동 수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거다. 인간도 예전의 평균수명(서른 살)에 비추어보면 거의 들어맞는 이야기라고. 그러니 뒤집어 생각하자. 그대를 향해 두근대는 동안 나는 제대로 살고 있다고. 그이 앞에서 심장이 멎은 듯한 기분을 느낄 때 그때가 영원이라고.”(24쪽)
 이 책에는 사자, 호랑이, 토끼 등을 비롯해 사모아쇠물닭, 주머니고양이 등 익숙하고도 낯선 동물 500여 종이 등장해 각각의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동물들의 삶과 자신의 생각을 함께 버무려 시로 탄생시킨다.
 책 속의 글은 연재나 청탁의 방식이 아닌 오롯이 시인의 의지로 썼다. 그는 트위터에 글의 일부를 공개,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는 사이 500여편이 넘는 글은 100~200자의 제한된 글자 수에 맞춰 재편집되면서 일종의 시와 닮은꼴을 갖췄다.
 “인간이 이를 두 번 가는 데 비해서 코끼리는 일생 동안 이를 여섯 번 간다. 마지막으로 난 이가 닳아 없어지면 굶어 죽는다. 보통 50년 넘게 살지만 임플란트 코끼리였다면 수명이 훨씬 길었겠지. 거대한 맷돌들을 여섯 번이나 쓰고서도 더 갈아야 할 게 남았다니 코끼리의 삶도 참 퍽퍽하구나.”(66쪽)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한 이 글의 제목은 ‘치과에서2’다. 사람이 아픈 치아를 치료하기 위해 찾는 치과를 코끼리가 간다니 그 발상이 신선하다.
 그러면서도 여섯 번째 이가 다 닳아 없어지면 굶어 죽는 코끼리의 생이 서글프고 또 그 와중에 임플란트 코끼리를 생각해 내는 시인의 위트에 피식 웃음이 난다. 
 “아델리펭귄의 포식자들은 하늘에서온다. 남극도둑갈매기들이 통통한 새끼를 채 가는데 부모가 막을 방법이 없다. 동그랗고 단춧구멍같이 생긴 눈으로 쳐다볼 뿐. 얼굴 근육이 없기 때문에 멀뚱. 뺏겨도 멀뚱, 슬퍼도 멀뚱, 눈물이라도 흘리면 좋을 텐데.”(401쪽)
 위에서 언급한 ‘펭귄과 가면’이라는 글 속에는 동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들어있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세계, 그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
 새끼를 잃고 멀뚱 바라보기만 하는 펭귄을 안타까워하는 그의 시선이 따뜻하다.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은 붓과 펜으로 각양각색의 동물들을 표현한 수채화다. 글 아래 자리한 이 그림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삶은 달걀과 사이다의 궁합을 모르는 이는 없겠죠? 옛날에 ‘나랑드사이다’란 상표를 가진 사이다가 있었어요. 그대여, 그때 삶은, 달걀을 나랑 드셔야 했어요.”(409쪽)
 608쪽이라는 방대한 분량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이 책은 동물감성사전인 동시에 인간 관찰기이기도 하다. 
 도마뱀과 코끼리. 그리고 인간. 시인이 그린 지구는 얼핏 보면 어린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와 닮았다. 이 책은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동물들의 사연과 그 사연 속에 슬쩍 곁들여진 사람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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