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3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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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3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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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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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래 수필가

[경북도민일보]  지난 설날 외손자 녀석이 제 부모와 함께 왔다. 3월이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여덟 살짜리 아이다. 제 어미는 새배를 하고 일어서는 아이에게 맛있는 것이나 주면서 먹고 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방안으로 몰아넣고 공부를 시키는 것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방과후 시간에 1시간씩 배웠다는 바둑실력을 자랑하고 싶어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딸아이는 이번 봄방학 기간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다음 학년에 대비하여 공부를 해야 하는 골든타임이라 작심하고 있는 듯했다. 단시일에 2학년 수학을 괘도에 올려놓을 생각이다. 아이는 평소 영어학원과 피아노학원 그리고 태권도장과 수영장을 요일에 맞춰 다녔고, 틈틈이 줄넘기와 롤라스케이트도 가르친 것을 나는 안다. 좀 놀게 하지 그러느냐고 했더니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투였다. 그 후부터는 아예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해 삼월. 나는 그야말로 청운의 꿈을 품고 유학길에 올랐다. 고향 선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였다. 지금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그때는 버스로 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강을 건너면 들판이 나오고, 들판을 지나면 큰 고개가 나왔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을 다녀갔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 3시간을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은 갓 빻은 쌀자루를 들고 가기도 했고, 어느 때는 머리통만한 무를 두어개 자루에 담아들고 가기도 했다.
 뜰을 내려서며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서는 것이 전부였을 뿐 나의 학교 길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때도 동네 선배들이며 친구들과 함께 오릿길을 걸어서 갔고, 고작 가을 운동회날 어머니가 삶은 고구마를 들고 온 것이 고작이었다. 원래부터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자랐다. 아마도 그때는 너나없이 모두 그랬다. 

 시골뜨기 촌놈인 나는 학교서도 늘 어깨를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교실에서는 유독 어깨가 넓은 녀석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처세의 기본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또 어깨가 비슷한 끼리끼리 어울렸지 나처럼 눈길이 마주칠까 두려워하는 아이들은 아예 관심이 없었다. 난 그저 집과 학교를 매일 왕복하며 공부나 하는 전부였다.
 그 시절 나는 책 읽기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교문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오는 길에 서점(정확하게 말하면 헌책을 빌려주는 책방)이 있었다. 그 곳에 가끔 들어가 책을 빌려보고는 했는데 2학년 무렵에는 그 집에서 내가 읽지 않은 책이 없는 듯했다. 처음에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가들이 쓴 책을 읽었고 나중에는 무협소설이며 만화책까지도 두루 섭렵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학교공부는 시험이 예고되면 그때부터 정식으로 시작하였고 평소에는 요즘 말로 가방만 왔다 갔다 했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이 그랬다.
 요즘은 공부 걱정보다 집 밖에서의 교우관계 걱정이 더 심각하다. 상급학교에 진학이나 새 학년으로 진급하여 새로운 얼굴들이 만나게 되는 3월에는 학급에 무서운 아이들은 없는지, 왕따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이는 집집마다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끼리의 대화에서도 단골메뉴이다.
 아이들은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3월병’을 앓는다고 한다. 3월 한 달은 이른바 탐색기라 한다. 지난해 3월 경찰청 학교폭력신고센터에는 전달의 두 배에 가까운 학교폭력이 신고 되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3월이 이렇게 잔인하게 변한 것은 그냥 세월이 흘러 그리 된 것이 아니라 경쟁 일변도의 시대상황에 맞장구를 치는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지금도 눈 감으면 학창시절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시절이 어느 새 호랑이 담배 피울 적의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설날을 맞아 외갓집에 온 손자가 쉬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을 말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여덟 살짜리 외손자가 맞은 잔인한 3월을 바라보며 수 십 년 전에 맞았던 나의 3월,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한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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