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긍정으로 다가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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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긍정으로 다가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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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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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래 수필가
[경북도민일보]  가만히 앉아 봄을 기다리기가 지루하여 꽃집에 가서 수선화를 한 분 사왔다. 튼실한 꽃대가 이파리 속에 숨어 있었는데 베란다에 두고 오가며 기다리고 있는 눈길을 의식해서인지 서둘러 꽃망울이 터졌다. 늦은 저녁인데도 맑고 노란 꽃잎이 벙글어 올랐다. 갖 핀 수선화를 두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너무 미안해 아내와 와인잔을 앞에 놓고 봄에 대해 이야기 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즐겁다. 입학과 진학한 학생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꿈에 부풀고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마음도 신이 날 것이다. 갈무리해 두었던 씨앗을 꺼내 살펴보는 농부들의 마음속에는 벌써 풍년이 와 있는 지도 모른다. 올해 결혼을 앞둔 청춘들이나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신혼들의 가슴은 또 얼마나 설렐 것인가.
 영화관과 담을 쌓아온 나지만 겨울을 지나면서 몇 편의 영화를 보았다. ‘명량’을 보았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았고, ‘국제시장’을 보았다. 입장객수 증가에 나도 한 몫을 한 셈이다. 빈번한 외침으로 얼룩진 역사며, 가난에 찌들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스쳐갔다. 지금 생각해도 흐르는 눈물에 손수건을 적시며 영화에 몰입했던 시간이 좋았다. 그 영화들은 물론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이를 통해 다가올 계절을 내다보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봄을 앞두고 지역 문학계에도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대구문인협회의 수장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경쟁 끝에 바뀌었다. 시와 수필과 아동문학이라는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벌였던 아름다운 승부였다는 후문이다. 또 지난 2월에는 대결 없이 싱겁게 끝나기는 했지만 경북문인협회의 수장이 바뀌었다. 비슷한 시기 전국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영남수필문학회도 간판의 얼굴이 바뀌었다. 우리 지역의 문학 역량이 한국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영향력으로 볼 때 바야흐로 새 봄과 함께 지역에 문예부흥이 약속이나 된 듯하다.
 정치나 경제에는 눈길 주고 싶지 않아 귀를 막았지만 어깨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어찌 할 수가 없다. 여야 정당 대표의 면면도 바뀌어 새로운 활력이 나는 듯하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의 언덕을 오르면서 가쁜 숨을 고르는 중에 뜻밖의 어린이집 핵주먹이 이 땅의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심장을 쓰리게 했다. 세금과 복지의 상관관계를 놓고 연일 입씨름을 하는 모습은 봄은 왔지만 꽃소식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우울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벌 나비도 날아들겠지. 졸업과 동시에 입학한 학생들, 그리고 취업을 앞둔 청년들에게도 꿈이 피어나리라. 아, 봄이 오면 지난 가을 결혼식을 올렸던 신혼의 방에서는 아기 울음이 들려오겠지.
 봄을 기다리면서 나는 회상한다.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하는 이순신 장군의 음성을 생각하며 두 손을 불끈 쥔다. ‘아부지 내 잘 살았지예. 그런데 참 많이 힘들었심더’ 하던 덕수의 감정이 이입되어 솟아나는 행복을 덤으로 가지게 된다. 어디 그 뿐이랴. 언 땅에 봄이 와서 시골의 고향 들판에 겨울을 이긴 보리가 솟아오르면 한 번 강을 건너간 님은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국제시장 꽃분이네에 몰려나온 손님들은 배고팠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추위 속에서 떨며 기다려온 봄을 대견스러워 할 것이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아도취’이다. 용모가 수려한 나르시스는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해 빠져 죽었으며, 그가 죽은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수선화. 입춘지절에 지역의 문예가 부흥하는 봄을, 모든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봄을 기다린다. 한 송이 해맑은 수선화를 바라보며 긍정의 기대를 품고 있는 오늘, 이것이 나 혼자만의 자아도취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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