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시비의 세계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세계라는 뜻이다. 동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은 힘이다. 그들은 옳고 그름을 합리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버린다. 약한 개체는 자기가 잡은 먹이를 강한 자에게 빼앗겨도 묵묵히 감내하는 것이 그들의 질서이다. 흔히 말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따지고 판단해서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한다. 당사자들끼리 해결하지 못하면 법률전문가들에게 판단을 의뢰하지만 쌍방이 모두 만족하는 결론에 이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황희 정승은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치고 87세가 될 때까지 영의정의 벼슬만 18년을 지낸 분이시다. 세종임금이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 관직에서 놓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렀지만 때로는 조석의 끼니를 걱정할 만큼 청렴하게 살았던 분이다. 여섯 딸이 있었는데 치마 하나를 서로 돌려가며 입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야말로 청백리의 표본 같은 삶을 살았던 분이시다.
한 번은 집안의 노비 두 사람이 서로 다투다가 황희 정승을 찾아와 상대를 비방하면서 자신은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했다. 묵묵히 듣던 황희는 “그래 네 말이 맞네”라고 하면서 돌려보냈다. 조금 있으니 같이 싸웠던 다른 노비가 역시 씩씩거리며 정승을 찾아와서는 상대를 비방하면서 자신은 억울하다고 했다. 묵묵히 듣던 황희는 “그래 네 말이 맞네”라고 하면서 또 돌려보낸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말을 건넨다. “대감께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는 않고 서로 다른 말을 하는데 모두 맞다고 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황희 정승은 “그래요, 당신 말도 일리가 있소”라고 응대했다.
자기 집안의 가솔들의 다툼이지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란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화이다. 이쪽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이 맞을 수 있고, 저쪽 입장에서 보면 또 저 말이 맞을 수 있다. 시비를 가리는 일에 직접 가담하기보다 당사자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이 힘들어 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 화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백전노장 황희는 알았을 것이다.
자녀들에게 베푸는 사랑이라는 것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주어지는 사랑인지 부모님의 입장에서 주어지는 사랑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부모의 욕심이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위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찰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인들의 삶은 복잡하다. 일이 많아서 복잡하기도 하지만 핵심은 인간관계의 복잡함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소중한 존재로 따뜻하게 배려하며 살아갈 여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을 소홀하게 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며 나아가 다툼이 일어난다. 뒤늦게 시시비비를 가려보려 하지만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삶의 여유란 것은 가끔씩 타인의 입장에서 관계를 살펴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있다.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살펴보라는 뜻이다. 그러면 타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어서 시시비비의 다툼도 좀 줄어 들게 된다. 내 중심의 삶은 항상 내가 옳고 내가 정당한 것으로 합리화한다.
나를 내려놓고 현실을 직시하면 보다 객관적으로 현실을 파악할 수가 있다. 내가 소중하듯이 타인도 소중한 존재이다. 내 중심의 사고방식을 극복하지 못하면 시시비비에 시달리는 고단한 삶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비의 세계에서 한 발 물러섰던 황희 정승의 일화는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우리들의 삶에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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