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돼지 3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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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돼지 3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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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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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래 수필가
[경북도민일보]  공무원으로 정년퇴임을 맞은 후 떠난 여행의 의미는 남달랐다. 한 직장에서 평생을 보낸 후 지난 인생을 뒤돌아본다.
 나무가 보이고 하늘이 보인다.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 보이고 하늘에 뜬 낮달이 보인다. 그렇다. 나의 시대가 저 낮달처럼 지고나면 다음 세대가 새롭게 열릴 것이다.
 이번 여행은 아들, 며느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다. 창밖을 바라보니 초승달이 떠있다. 앙상하던 가지에 새파란 새싹이 돋아나더니 어느덧 푸르름이 만발했다. 지난해에 이어 일 년만에 다시 온 아들 내외의 집에서 창밖으로 보는 아침 풍경이 신선하다.
 저녁에는 번화가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김치찌개, 오징어볶음, 갈비가 놓인 식탁에서 한국의 봄과 그 무렵의 추억들을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들 내외는 몇 달 후면 지금의 타운하우스를 떠나 싱글 홈으로 이사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돈 걱정이 앞섰다. 아들은 지금의 집과 그 동안 저축해 둔 돈으로 해결하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은행 융자로 충분히 가능하다며 나를 안심 시켰다.
 착한 소년이었던 아들이 속 깊은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아들이 어릴적 베갯머리에서 읽어줬던 ‘아기돼지 삼형제’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집을 떠난 아기 돼지 삼형제는 짚으로, 나무로, 벽돌로 집을 지었다. 어느 날 나타난 늑대가 입김을 세게 불자 짚과 나무로 지은 집은 날아갔고 두 형제는 잡아먹혔지만 벽돌로 지은 막내 아들의 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늑대가 지붕으로 올라가 굴뚝을 타고 침입했으나 화덕에 큰 솥을 걸고 끓인 물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여태까지 공부만 했던 아들과 며늘아이가 미국에 뿌리 내린지 삼년이다. 그동안 새로운 이웃과 오가며 정을 나누는가 하면 아껴 쓰고 절약하면서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이 그리는 미래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기특하고 대견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대로 자부심이 생겼다.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하’라는 삶의 교훈을 가르친 엄마 돼지와 세상을 쉽게 대하지 않고 힘들여 벽돌집을 지은 막내 돼지의 의지가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 같아서. 우직하고 성실한 아들 내외는 늑대의 입김에 날아가지 않는 튼튼한 벽돌집을 지었고 굴뚝 아래 솥을 걸고 재난을 피하는 지혜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맞은 아침이다. 며늘아이가 담가 놓은 배추김치가 잘 익었다. 거기다가 다시 어제 사온 재료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냈다. 그 중 하나가 고사리 무침이다.
 미국에서 먹는 고사리 맛은 어떨까 하면서 입에 넣으니 한국에서 먹던 맛 그대로다. 한국 고사리가 아니라 미국 고사리가 입에 맞는 것처럼 한국에서 온 아들 내외가 스스로 설계, 지은 벽돌집에서 잘 뿌리내리길 소망한다.
 이 봄이 지나면 이국 땅 한 귀퉁이에 튼실한 한국인의 뿌리가 내릴 것이다. 온기 가득한 벽돌집에 아기돼지 3형제의 교훈이 꽃필 것이다. 그리고 훗날 이들은 또 그 아이들에게 ‘아기돼지 3형제’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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