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 그 이름은 노인
  • 경북도민일보
지혜로운 자, 그 이름은 노인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15.04.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정옥 위덕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경북도민일보]  신라 제21대 비처왕이 천천정에 거둥했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면서 왕의 행차를 막았다. 쥐가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세요” 했다. 왕은 신하에게 까마귀를 따라가 보라고 명했다. 신하가 까마귀를 따라 경주 남산 동쪽 기슭에까지 가보니 거기선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괴이하여 한참 쳐다보고 있다가 까마귀를 놓치고 길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때 한 노인이 연못 속에서 나와 글을 바쳤다. 그 글 겉봉에는, ‘이 글을 떼어 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떼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신하는 그 글을 왕에게 바쳤다. 왕은 “두 사람을 죽게 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만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니 차라리 떼어 보지 않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곁의 사람이 왕에게 아뢰었다. “이 글 속의 두 사람이란 일반인을 말한 것이요, 한 사람이란 바로 왕을 말한 것입니다” 했다. 왕이 그 말을 옳게 여겨 글을 떼어 보니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왕이 궁중으로 돌아와 시킨 대로 했더니 왕을 해치고자 하는 두 사람을 죽일 수가 있었다.
 이 노인이 나온 못을 서출지(書出池)라고 하는데 경주 남산 동쪽 기슭에 있다. 왕을 도와 왕의 목숨을 구해준 지혜로운 이는 나온 노인이었다.
 신라 제33대 성덕왕 때였다.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길이었다. 순정공의 아름다운 부인 수로부인도 동행하고 있었다. 도중에 일행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곁에는 천 길 높이의 큰 바위가 병풍 같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 위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수로부인이 그 꽃을 갖고 싶어 주위의 사람들에게 부탁해도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그때 암소를 끌고 길을 지나가던 노인이 있었다. 부인의 그 말을 듣고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천 길 절벽을 올라가 그 꽃을 꺾어다 수로부인에게 바쳤다. 꽃을 바치면서 노래도 불렀다. ‘자주빛 바위가에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젊으나 젊은 무사들도 접근하기 어려운 천 길 낭떠러지 바위에 올라 꽃 꺾어 바친 용감한 이, 그는 노인이었다.
 바닷가를 따라 일행의 행차가 이틀을 더 가다가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더니 부인을 끌고 바닷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졸지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일이라 망연자실한 순정공에게 한 노인이 나타났다. “옛 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쇠라도 녹인다 했습니다. 아무리 힘센 바다 속의 용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이 마을의 백성들을 빨리 모으십시오. 그리고 지팡이로 언덕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함께 부르면 부인을 다시 만날 수 가 있을 것입니다” 순정공이 노인의 말대로 했더니 용이 부인을 정중히 모시고 나왔다. 위기의 순간에 썩 나서서 해결을 해주는 지혜로운 이, 그는 노인이었다.
 신라 제49대 헌강대왕 때에는 서울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들이 즐비하고 담은 서로 맞닿았고, 초가집은 하나도 없었다. 음악과 노랫소리가 길에 끊이지 않았고, 바람과 비는 사철 순조로워 태평성세였다. 어느 날 왕이 개운포(지금의 울산)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물가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서 길을 잃었다. 왕이 괴상히 여겨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한 일관이 아뢰었다. “이것은 동해용이 부린 조화입니다. 그를 달래려면 좋은 일을 해서 푸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짓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마자 구름이 걷히고 안깨가 흩어졌다. 또한 동해의 용은 기뻐하면서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왕의 덕을 찬양하면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해 바쳤다. 하늘의 기운과 바다의 조화를 꿰뚫고 해결법을 제시한 일관은 현자였을 것이고, 당연히 지혜로운 노인이었음을 많은 학자들이 얘기한다.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곧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노인의 경험과 지혜는 도서관 하나의 가치만큼 크다는 얘기다. 그래서 예전 신라의 왕들은 위기의 순간에 처해 있을 때 노인의 지혜를 경청하고, 존중하고, 대접하였던 것이다.
 지난 3월 우리 대학에 성인학습자들이 많이 입학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풋풋한 대학생들과는 달리 그들과 함께 수업하면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 그들이 가진 연륜과 지혜를 본받고 싶다. 나 또한 나이가 들어 누군가에게 지혜로운 노인, 즉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