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기, 잘 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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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기, 잘 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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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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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일 동국대 대학원 객원교수
[경북도민일보]  잘 살기도 어렵지만 잘 죽기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또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인지도 뚜렷한 해답은 없다. 죽자하고 돈만 모으는 삶이 잘 사는 것인지, 죽자하고 벼슬길에만 매달리거나 명예만 좇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런 삶이 인간의 최상의 삶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영 부정할 수도 없어 보인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최상의 삶을 ‘자기실현’이라고 한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삶’과는 개념이 다르다.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는 내면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사는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다. 농부는 농부로서 어부는 어부로서 상인은 상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해도 된다. 자신의 깊은 마음 속에서 진정으로 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자기실현이라고 하면 된다. 자기실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흔하지가 않다.
 78세의 나이에 장편소설을 낸 사람이 있다. 두 번째 소설이다. 현재도 한 권을 집필하고 있다고 한다. 그 분은 전업 작가는 아니다. 옆에서 그 분을 지켜본 소감은 명예를 바라서도 아닌 듯 하고, 돈을 바라서는 더욱 아닌 듯하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소설을 쓰고 계신다. 소설을 평가할 자격은 없지만 ‘대각의 길 떠나다.’ 라는 소설은 잘 읽혀지고 재미도 있으며 역사적 사실들이 소상하게 기록된 매우 가치 있는 소설이다. 그 분의 평소 삶을 보면 아마도 소명의식에 따른 자기실현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분은 격동의 근대사를 몸소 체험하고 평생을 포항에서 교육자로 살아온 성홍근 박사다.
 중국에 곧은 낚시 바늘로 유명한 강태공이란 사람이 있었다. 젊은 시절 자신의 운명을 살펴보니 80세가 되어야 관직에 나갈 팔자였다고 한다. 노인으로 생을 마감할 나이에 관직에 나간다는 운세는 가히 절망적일 수도 있으나 강태공은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초야에 묻혀서 글을 읽고 낚시를 하면서 세월을 보낸다.
 강태공의 삶이 이러하니 생계를 꾸리는 것은 아내의 몫이었다. 끼니를 잇기 어려워도 강태공은 농사일도 하지 않고 낚시하며 때를 기다렸다. 하루는 아내가 마당에 곡식을 널어두고 밭일을 가면서 강태공에게 비가 오면 곡식을 좀 거두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낮에 비가 억수로 내렸다. 곡식이 둥둥 물에 떠내려가도 강태공은 책만 읽고 있었다. 돌아온 아내의 원성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강태공이 80세 되던 해에 위수에서 낚시를 하다가 드디어 문왕을 만나게 되고 그 길로 관직에 나아가 문왕의 스승으로서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생몰연대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100세 이상 살았다고 전해진다. 강태공 역시 자기실현의 삶을 살았던 분으로 보여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회갑잔치라는 말도 이제는 사라진 듯하다. 시골 경로당에 가면 70세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나이를 잊고 내면의 소리를 충실하게 들으며 자신의 일을 하는 삶이 아름답고 잘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잘 죽는다는 것은 어떻게 죽은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죽음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모두가 겁에 질릴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죽음은 완벽한 마무리이자 끝을 의미한다. 깨끗하게 정리하고 스스로 뿌린 것은 스스로 거둬어 가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최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스로 죽음을 택할 만큼 뭔가 억울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까지 정의와 진실을 위해 살아서 투쟁하지 않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만 남은 이들에게 던지고 무대에서 사라져버린다면 뒷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증거를 찾고 최선의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힌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삶과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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