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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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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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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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헌 삼우애드컴 대표
[경북도민일보]  디지털 시대의 연필, 대체 불가능한 창조의 힘이라 할 수 있는 연필. 왜 나는 연필을 주목할까? 맨 처음 글을 배울 때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썼던 기억이나, 어릴적 하얀 종이에 낙서했던 기억들 때문일까?
 어떤 이에게는 추억 속의 필기도구로 기억된, 이제는 학생들과 소수의 마니아를 빼면 잘 사용하지 않는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지는 연필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절 연필 한 자루는 큰 선물이었다. 요즘같이 학용품이 풍부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새 연필을 쓰다가 책상에서 굴러 떨어져 교실 마루 틈바구니로 떨어진 그 연필. 그 잃어버린 연필의 상실감을 요즘 우리 아이들이에게 들려준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얼마 전 종영된 ‘발칙한 사물이야기 다빈치 노트’에서 연필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걸 본적이 있다. 토요일 아침의 시간, 아이들과 유일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고, 광고 기획가 박웅현 선생은 생각보다 재미나고 박력이 있어 더욱 좋았다. 출연자들 모두 자신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자신 만의 센스와 유머로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른다.
 세 남자의 자유분방한 시선으로 연필을 바라본다. 박웅현은 ‘연필, 영원을 꿈꾸다’, 일러스트 작가 밥장은 ‘연필은 어른들의 장난감’, 장대익 교수는 ‘연필은 뇌를 달련시키는 아령이다’고 했다.
 연필의 모양과 쓰임새는 누구나 알만큼, 단순하고 소박한 사물이지만, 말 그대로 우리가 쌓아온 위대한 유산의 조용한 공로자가 연필이다.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최고의 작품을 그려 나갈 때, 세계적인 도시의 초안을 작성할 때, 오선지 위의 독창적인 음률을 수놓을 때, 세상의 이목을 집중 할만한 한 줄의 카피도 그 시작은 바로 연필의 끝에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연필은 무엇보다 겸손하다. 잘못 쓰면 언제든 지우고 새로 써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필 한 자루를 가만히 손에 쥐면 겸손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새롭게 써 나가며 미래로 진보하는 자유를 얻게 되는 지도 모른다. 7080 스타 전영록의 1983년 발표곡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가 있지 않은가? 이 노래가 나올 당시 많은 청소년들이 즐겨불렀고 연필로 편지를 쓰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던 불후의 명곡이다. “처음부터 너무 진한 잉크로 사랑을 쓰면 지우기가 너무 너무 힘들잖아요.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라는 가사가 금새 멜로디로 흥을 거려진다.
 여기 세월을 이긴 강력한 도구, 연필에 숨겨진 과학이 있다. 지난 2014년, 남극에서 무려 100년 전 작성된 수첩이 복원됐다. 그 비결은 바로 연필에 숨겨진 과학, 흑연에 있었다. 볼펜이나 만년필 같은 잉크가 아닌 탄소로만 이뤄진 흑연은 가장 천연에 가까운 재료로 월등한 보존성을 지니고 있다. 2010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 연구팀은 연필 글씨 위에서 3M 스카치테이프를떼었다 붙였다 하는 과정에서 신소재 그래핀을 발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세월을 이겨낸 위대한 발명품과 위대한 작품들의 시작엔 언제나 연필이 함께 했다. 언제든 지우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필.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창의력을 불태운 위대한 사람들이 있다. 베토벤의 오선지에도, 반 고흐의 화폭에서도, 에디슨의 손에도 연필은 쥐어져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가 김훈의 연필은 ‘창조의 도구’다. 그는 오직 연필로만 글을 쓴다. 그래서 연필을 육체의 힘을 정직하게 받아주는 필기구로 칭하고 있다. 샤프나 볼펜에 밀려 연필은 우리 손에서 멀어진지 오래된 아날로그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요즘같이 스마트기기의 발달로 연필은 더욱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오늘 아침 새로운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다시금 연필을 깎아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연필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에게 사랑의 편지로 써보고 싶다. 가정의 달 5월에 그 편지를 받아보고 빙그레 웃음 지을 그 사람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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