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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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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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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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일 동국대 대학원 객원교수
[경북도민일보]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볼 수 있다. 그래서 귀농, 귀촌을 꿈꾸기도 한다. 실제로 귀농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2014년 설문조사(복수응답)에 따르면 귀농, 귀촌의 이유로는 ‘조용한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서(31.4%)’,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껴서(24.8%)’, ‘은퇴 후 여가 생활을 하기 위해서(24.3%)’, ‘세 일자리나 농업관련 사업을 위해(22.2%)’ 순으로 조사되었다. 여유로운 삶을 찾아서 귀농을 하는 경우가 80% 정도에 이르고 있다. 그만큼 현대인들의 삶은 고단하고 여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귀농·귀촌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45.4%로 나타났으며 실패 또는 모르겠다는 평가가 49.6%로 좀 더 높게 나타났다. 귀농·귀촌의 꿈을 안고 시골로 들어가지만 만족하기란 결코 쉽지 않음을 나타내는 통계수치이다. 이는 막연히 도시생활을 탈피하기 위한 귀농이 아니라 좀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필자는 10여년 전에 포항시 죽장면의 깊은 산골에 농지를 마련했다. 당시에는 비포장도로였고 산골의 거의 마지막 지점이어서 하루에 차량이 몇 대 정도 내왕하는 적막한 산촌이었다. 공기도 맑고 개울의 물도 그냥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했다. 공기나 물을 오염시키는 그 무엇도 없었다.
 봄이면 산나물이 지천이고 여름이면 개울에 버들치가 한가하게 노닐고 가을이면 단풍이 고왔다. 산촌의 멋은 단연 겨울이었다. 눈이 내리면 며칠 간 발이 묶인다. 사륜구동 차량만 겨우 드나드는 곳이다. 고라니와 삵의 발자국이 시골집 울타리 곳곳에 찍혀있고 길을 따라, 산길을 따라 발자국들이 죽 이어져 있다.
 대낮에도 새끼를 거느린 멧돼지가 씩씩거리며 좁은 길을 가로질러 간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외진 산골 집에서 군불을 지피고 뜨뜻해진 방에 등을 대고 누우면 혼자라는 것이 외롭지가 않다. 오히려 자연 속에 안긴 포근함이 느껴진다. 어쩌다 소피를 보러 나와서 하늘을 보면 차가운 밤하늘의 별들만 초롱초롱 눈을 밝히고 산촌을 지켜준다. 말을 걸면 대답이라도 할 것 같은 친근감이 느껴진다. 온 몸이 오슬오슬 떨릴 때까지 한참을 마당에서 서성이기도 한다. 사람의 원초적인 삶의 형태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산촌생활은 낭만과 여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패와 시행착오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기후와 토양에 맞는 작물을 선택해야 하고 노동력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농기계도 준비해야 한다. 처음 시도한 것은 차나무 재배였다. 1년생 묘목을 수 백 그루 옮겨 심었는데 첫 해는 잘 자랐다. 꽃도 피고 열매도 듬성듬성 맺혔다. 차나무 농장을 꿈꾸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2년 만에 몽땅 죽고 말았다. 이듬해에는 다양한 열매채소와 잎채소를 심었다. 여름이 올 때까지 놀라울 정도로 잘 자랐다. 농사꾼이 다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추수를 앞두고 밤톨만한 우박이 한 차례 쏟아지더니 익어가는 수박이며 채소들이 고스란히 주저앉고 말았다. 우박이야 말로 단 한 번에 막대한 피해를 몰고 오는, 속수무책의 자연재해였다.
 농기계는 안전사고로 인해 더욱 조심해야 한다. 경운기는 그냥 몰면 되는 줄 알았다. 거름을 가득 싣고 길에서 밭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좌우로 방향을 틀기 위해 동력전달 장치를 조작하는데 반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 클러치를 잡았더니 왼쪽으로 가는 것이다. 이런 변고가 있나? 그대로 왼편 개울에 경운기를 처박고 말았다. 몸을 다치지는 않았지만 시동이 걸린 채 수직으로 처박힌 경운기를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경운기는 동력전달 장치가 내리막길에서는 반대로 작동한다는 초보적인 지식을 몰랐던 것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귀농·귀촌의 준비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가 55.2%였다. 3년 이상도 21.4%에 이른다. 결국은 철저한 준비만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귀농·귀촌은 물론이고 인생도 실패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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