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의는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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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정의는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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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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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일 동국대 대학원 객원교수
[경북도민일보] 태풍 고니가 거칠게 동해를 따라 지나갈 때, 나는 산촌 오두막에 머물고 있었다. 마루에 앉아서 세찬 비바람을 바라보았다. 몇 차례 강풍에도 잘 견디던 옥수수가 쓰러지고 3m 가까이 자란 수수도 결국은 넘어가고 말았다. 무너져 버리는 식물들을 보는 순간 문득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일어났다.
 처칠은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형태이지만 지금까지 존재한 다른 정치제도보다는 좋다.”라고 말했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젊음을 희생했고 고난의 길을 걸어 왔다. 우리의 역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는 사법정의이다. 사법정의가 무너지면 아무리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다 해도 빈말이 될 수밖에 없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고 만인에게 평등하게 집행되는 것이 그 가치이고 생명이다. 법이 죽었다는 것은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나아가 법집행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법은 옳고 그름을 가리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평성이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법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법은 없는 것이 오히려 낫다. 왜냐하면 친한 사람은 잘못을 해도 눈을 감아주고 미운 사람만 골라서 벌을 준다면 그 법집행은 독제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법의 진정한 가치는 공평성이다.
 얼마 전에 전직 총리가 뇌물수수 혐의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구치소에 수감되는 일이 있었다. 9억원이라면 서민은 평생 만져보기 어려운 거금이다. 재판도 5년이나 끌었다. 그래서 공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는 말도 등장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루어진 것이나 수감 시점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검찰과 법원을 모두 비난하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 그것도 가장 상급법원인 대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에 대해 전직 총리의 반응은 ‘사법정의는 죽었다.’였다. 대법관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억울하게 자신을 감옥으로 보냈다는 뜻으로 비쳤다. 판결도 사람이 하는 것이니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민주투사로 먼저 이름을 날렸고, 여성 정치인으로서 장관도 했고 국무총리까지 한 사람이다. 사법정의는 죽었다라고 구호를 외칠 만큼 혈기 넘치는 젊은이는 아니다. 그는 국가 원로의 한 사람이다. 원로답게 진정성과 설득력이 있는 말로 국민에게 좀 더 다가서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동일한 사실을 두고 판단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니고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사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그리도 판단을 어렵게 한단 말인가?
 업자가 뇌물로 준 돈 가운데 1억원이 그의 동생 전세자금으로 쓰인 것이 밝혀졌고, 그것을 조사하는 과정에 그는 성경에 손을 얹고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실을 밝혀서 정의를 실현하기를 원했다면 묵비권이 아니라 동생을 불러서 전후 사정을 말하도록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사법정의는 죽었다라고 말해도 결코 늦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경륜으로 보아 묵비권을 행사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자신에게 불리하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바로 묵비권이다. 묵비권이란 것이 정의와 진리를 실현하는데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순진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진실을 말하면 서로가 알아듣고 공감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누는 언어가 불통이라면 안타까움을 넘어 불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성인이라면, 더구나 정치 지도자라면 정직하고 진실해야 하는 것이다.
 사법정의가 죽었다면 민주주의가 죽은 것이다.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외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고 살리기 위해 우리들이 할 일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진실을 진실하게 얘기한다면 통하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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