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6월 사임
  • 경북도민일보
토니 블레어 6월 사임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07.0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한 지 1년이 지난 1953년에 태어났다. 당시의 관심은 세상을 떠난 스탈린의 후계자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에 쏠렸다. 그가 태어난 날 원스턴 처칠은 수에즈운하 지역의 영국군을 소련이나 이집트가 선제공격할 것에 대비해 국가안보위원회 비밀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블레어는 구세대의 관심사였던 냉전이나 이념 등은 유소년기 때의 일이어서,훨씬 자유로운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다가 1983년 총선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빌 클린턴을 만났고, 민주당의 선거 전략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1994년 블레어가 노동당 당수에 오르자 보수당의 한 장관은 “날개까지 달린 빌 클린턴”이라고 일컬었다. 블레어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클런턴화(化)’라는 조어(造語)를 내놓기도 했다. 블레어 자신이 클린턴의 현대화 전략을 배우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 “민주사회 지도자는 말을 잘해야 한다”며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를 사례로 들은 것을 보더라도,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았다. 1997년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을 때 토니 블레어의 지지율은 무려 83%였다.
 그는 앤서니 기든스가 제창한 `제3의 길’을 추종했다. 분배 위주의 전통적 좌파 정책을 버리고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친기업 정책을 폈다. 덕분에 영국은 연 3%에 가까운 성장으로 호황을 누렸으며, 런던은 국제금융도시의 명예를  되찾았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참전은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수렁이 되고 말았다.
 지지율이 20%까지 추락하자 그는 오는 6월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진보적인 클린턴을 닮으려던 그가 보수 성향의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협조하는 바람에 `부시 푸들’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金鎬壽 편집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