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의 문장’ 정취 그대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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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의 문장’ 정취 그대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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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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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l 청년사 l 2만원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 청대 문인 김성탄이 제5재자서(才子書)라고 꼽은 작품.
수호지를 일컫는 말이다. 수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책보다 인터넷이 더 가까운 세대에겐 너무나 낮설게 된 책이다.
수호지는 우리가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단행본이 아니다. 판본만 수십종류다. 번역서도 저마다 춤을 춘다. 일역판을 다시 옮기는 바람에 문장이나 표현이 `이상한’ 것도 있다. 때문에 소싯적에 고전깨나 읽었다는 이들도 함량미달을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전에 문외한인 세대가 수호지를 읽는다면 어떤 걸 잡아야할까. 자식에게 호연지기를 불어넣길 원하는 부모라면 또 어떤 수호지를 택해야할까. 옛 생각을 떠올리며 다시한번 그 시절에 느꼈던 감동을 살리고 싶은 장년층이라면 또 어떤 책을 구해야할까.
 도서출판 청년사가 90년에 내놓은 게 있다. 수호지가 지닌 여러가지 미덕을 한글로 고스란히 되살려낸 수작이다. 사실 동양고전이란 모두 한문으로 돼 있기에 원문이 지닌 묘미를 한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김성탄이 수호지를 일컬어 “천하에 문장이 수호만한 게 없다”고 했지만, 한문을 모르는 이들에겐 이 말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청년사판 수호지는 한문과 한글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일단의 무리’가 번역을 맡았기에 눈에 띈다. 그들은 바로 `연변대학 수호전번역소조’다. 소조란 한 무리, 혹은 팀을 말한다. 연변대학이란 간판이 말해주듯 이들은 중국 본토에서 한문을 익힌 것은 물론 옛 한글문투를 아직 버리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문장이 맛깔스럽다.
 제 1회 `장천사는 제를 지내 온역(溫疫)을 물리치고, 홍 태위는 그릇하여 마귀를 놓치다’에서 홍 태위가 호랑이를 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청년사판은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그가 몸을 살펴보니 콩알 만큼씩이나 한 소름이 전신에 끼쳤다. `고얀놈들 같으니! 사람을 희롱해도 분수가 있지, 이제 산에 올라갔다가 천사를 못 만나기만 해봐라, 내려가서 혼을 놓고 말테다.’”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몽둥이를 말하는 봉(棒)을 순 우리말인 몽치(짧고 단단한 몽둥이)로 정확하게 쓰는 것도 좋다. 단락 사이사이에 배치된 한시를 우리말로 적절하게 살려내고 있는 건 압권이다. 운문은 통상 소설의 흐름을 끊는 수가 있기에, 수호지란 이름을 달고 있는 많은 책들이 원문에 있는 한시를 아예 빼거나 대폭 줄여놓고 있다. 그러나 청년사판은 그 정취를 고스란히 복원해놓았다. 그것도 빼어난 번역으로.
 제 16회 `양지는 금은 보화 짐을 호송하고, 오용은 지혜로 생신 예물을 빼앗다’에서 청년사판은 이렇게 노래한다. 황니강에서 오용일당이 재물을 탈취하는데 성공하자 “생신을 경하하려 고혈을 짜는 판에/백성들과 이웃들의 생사를 돌볼손가?/이제야 알았노라, 예로부터 털리는 건/가슴에 걸리는 일 저지른 연고임을” 황니강 재물탈취 대목은 이 시 덕분에 독자들에게 민중을 수탈하는 자를 호되게 꾸짖는 `장거(壯擧)’로 각인된다.
 소설가 이문열이 삼국지연의를 새로 쓴 이래 `평역’이란 이름이 유행하게 됐지만, 청년사판은 그런 자의적 해석 대신 이처럼 원문을 그대로 살리는데 역점을 둔다. 단 한문 원문이 첨가돼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은 있다.
 장회(章回)소설인 수호지는 한 회가 끝날 때면 다음 회를 예고한다.
 예를 들어 16회 말미는 이런 식이다. `양지가 황니강에서 자결하고자 하였는데, 필경 그의 생명이 어떻게 되었는가는 다음 회를 보라.’
 장회를 이야기 하는 건 판본별로 횟수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김성탄이 정리한 70회본이다. 김성탄은 후반부로 갈수록 문장이 조잡해지고, 이야기가 산만해진다며 70회본을 정본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청년사판은 가장 긴 120회 본을 고스란히 전한다. 후반부에 질이 떨어지기는 하나, `원문에 충실한’이란 출간 컨셉트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셈이다. 전문번역가들도 수호지에 관한한 청년사판을 으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고전이 지닌 흥취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특히 장대한 인간군상을 다룬 수호지는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도 충분히 다가갈만 하다. 문제는 번역이 얼마나 잘 돼 있는가에 달려있다. 청년사판 수호지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 줄만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여정엽기자 bit@
 
 
>>눈에 띄는 새책
 
 자랑스러운 한국인(에세이/서병욱 지음)
 오랫동안 언론계에 몸담고 글을 써온 저자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중 척박한 우리 세상에 물기가 돌고 살맛이 나게 하는 이야기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하서/ 9000원.
 
 △ 음식잡학사전(인문/윤덕노 지음)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은 역사, 인물, 유래, 재미있는 자투리 상식까지 음식의 모든 것을 풀어낸다. 레시피나 컬러사진 없이도 `천금채라 불릴 정도로 값이 비싼 와채’, `체면 효과가 있어 고3 수험생들에게 금기시되는 음식’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오감을 사로잡는다. 북로드/ 1만원.
 
 △ 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사회/송국건 지음)
 대권이 있는 그 곳, 권력의 결정체 청와대는 어떤 곳일까? 역대 9명의 대통령은 그 곳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 문민정부부터 참여정부까지 3대째 청와대 출입을 하고 있는 한 기자가 청와대에 대해 밝힌다. 네모북스 1만3000원.
 
 △마음 멈춘 곳에 행복이라(종교/성타 지음·양병주 사진) =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의 첫 생활 명상집. 대중적이면서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생활 법문과 더불어 <경북일보>의 `아침시론’에 크고 작은 세상사를 불교인의 관점에서 본 소회를 적었던 글을 새롭게 묶었다. 은행나무/ 1만원.
 
 △ 생명 윤리이야기(과학/권복규 지음·신동민 그림)
 우리의 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의학과 생명 과학의 발전은 과거에는 제기되지 않았던 민감한 윤리적 딜레마를 낳고 있다. 이에 생명 과학의 발전과 관련해 첨예하게 제기되고 있는 윤리적 논쟁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사유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한다. 책세상/ 1만3000원.
 
 
 
>>함께 읽는 어린이책

 
 △ 잉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베르트랑 플르노와 글·오성봉 그림·이혜경 엮음)
 잉카의 황금도시는 어디 있을까? 잉카 사람들은 어떻게 뇌수술을 했을까? 엉뚱한 궁금증을 재치 있게 풀었다. 잉카인들의 생활상과 정치 형태, 멸망시기까지 한 눈에 만나볼 수 있다.
 청솔/ 8500원.
 
 △ 햇덩이 달덩이 빵한덩이(박예분 글·홍태희 그림)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아이들이 동시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개성적인 시체와 더불어 귀여운 그림을 더했다. 아이들이 제 나이 또래의 친구와 마음을 주고 받듯이 부담 없이 시를 접할 수 있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시상을 전개했다. 청개구리/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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