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될 무렵 외할머니는 아들의 전사통지를 받게 되고 그때부터 `빨갱이는 다 뒈져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곧 자기 아들을 죽으라는 소리이매, 노발대발하면서 두 노인의 갈등은 시작된다. 빨치산이 거의 소탕되어 갈 즈음 가족 대부분은 삼촌이 죽을 것이라 예견하지만 할머니만은 아무날 아무시에 아들이 살아 돌아오리라는 점쟁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하지만 `아무날 아무시’에 집으로 찾아든 것은 아이들이 돌팔매에 쫓긴 구렁이 한 마리였다. 그것을 아들의 변신으로 즉시 믿게된 할머니는 졸도하고 외할머니는 구렁이를 극진히 대접하며 할머니의 빠진 머리카락을 태운다. 그 냄새 때문에 구렁이는 대밭으로 사라져 갔고 그후 장마가 끝나면서 두 노인은 화해한다는 이야기다. 반목하고 대립하며 이데올로기가 뭔지 알 리가 없으면서도 그 양 끝 편에 각각 서 있었던 두 노인을 화해케 한 것은 민족 동질성이었다. 그 동질성은 구렁이를 죽은 사람의 환생으로 믿는 그 샤머니즘적 보편 정서다.
장마의 계절이 왔다. 제주는 어제오늘 이미 장마가 시작되었고 곧 남해안지역으로 상륙하리란 전망이다. 요즘은 또 좌우 이념 갈등도 심해지는 듯하다. 여야가 그렇고 진보와 보수진영 사이가 그렇다. 올 여름 장마가 끝나는 어름에는 `장마’ 속 두 할머니의 화해처럼 이념을 달리하는 세력끼리, 또 남북한끼리, 우리 내부의 보혁간 이념 갈등이 화해로 풀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재모/언론인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