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 지진-일본을 이길 수 없는 이유
  • 한동윤
구마모토 지진-일본을 이길 수 없는 이유
  • 한동윤
  • 승인 201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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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 찾지 않은 아베 문제 삼지 않는 국민·언론

[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규수 구마모토와 오이타 지진으로 일본 전체가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지진에 관한한 세계 최고 수준의 예측 기술을 보유한 일본 전문가들의 경험과 실력을 비웃는 연쇄 강진(强震)과 여진(餘震)으로 40여명이 사망하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참담한 지진현장에서는 통곡과 절규가 들리지 않는다. 거처가 없어 좁은 차에서 지내며 삼각 김밥 한두 줄로 버텨도 눈물을 흘리거나 우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특히 심폐 기능이 약한 노인들이 눈 덮인 차가운 체육관에서 줄줄이 세상을 등졌지만 가족들은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면서도 통곡하거나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자위대가 파견돼 구조·구호활동을 벌이지만 구호물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만약 우리나라였으면 어땠을까? 지진을 예측하지 못한 정부를 원망하고 구호와 구조가 늦은 당국은 지옥의 저승사자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대통령은 왜 현장에 안 나타나느냐”고 아우성을 쳤을지 모른다. 인터넷엔 온갖 유언비어와 악담이 난무하고, 사이비 언론은 그걸 중계하고 삼류 구조대를 파견해 온갖 것에 시비걸며 구조작업을 방해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걸 세월호 침몰 때 겪었다.
 일본의 여진이 계속된 20일 일부 조간신문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구마모토 지진 뒤 처음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16~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신조 총리 지지율이 지난달보다 2%포인트 오른 44%를 기록한 것이다. 응답자 65%가 ‘정부의 지진 대응이 적절했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기막힌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지진이 난 뒤 구마모토현 근처에도 안 왔다. 총리 관저와 국회를 오가며 하루 한두 번씩 비상 대책 회의를 주재했을 뿐이다. 밤에도 일찍 퇴근했다. 지진 첫날만 자정 넘겨 퇴청했고, 그 뒤론 빠르면 밤 8시 18분, 늦으면 10시 35분 관저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밥과 물이 떨어져 주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아베는 끝내 구마모토를 찾지 않았다. 아베와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사실이 알려지자 비행기를 타고 승용차와 배를 갈아 타며 침몰 현장으로 달려갔다. 10시간 가까운 강행군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기다린 것은 차가운 눈총과 야유, 비난이다. 유가족 전부가 아니지만 일부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박 대통령을 향해 욕설을 날렸다.
 아베 총리는 지진 현장으로 달려가는 대신 14일 밤 9시 41분 카메라 앞에 섰다. 그가 한 말은 “주민 구출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게 전부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당시 이른바 ‘7시간 행적’ 때문에 엄청난 곤욕을 치렀다. 야당은 마치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그 시간 ‘딴일’을 하고 있었다는 듯 루머를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고, 그와 관련한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도배했다. 아베가 구마모토를 찾지 않았어도 “총리 뭐하느냐?” “혹시 딴 짓하는 건 아니냐?”고 시비거는 야당의원 하나 없는 일본과는 천양지차다.
 박 대통령은 그 후로도 세월호 현장을 찾았고 경기도 안산 분향소까지 찾았다. 그럴 때마다 유족들의 거친 항의와 욕설에 직면했고, 어느 좌파 언론은 박 대통령의 안산 분향소 조문 때 한 조문객이 박 대통령에게 접근해 함께 눈물을 흘리자 ‘기획 조문’ 어쩌고하는 하는 글까지 올렸다.
 물론 일본 지진은 천재(天災))다. 세월호는 인재(人災)다.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재앙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자세가 너무 다르다. 우리가 죽었다 깨어나도 일본을 따라가지 못 할 것 같은  이유는 이런 데서도 찾아진다.
 4·13 총선에서 호남을 석권하며 제3당으로 등장한 국민의당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세월호 특검’을 들고 나왔다. 뿐만 아니라 천정배 공동대표는 ‘이명박근혜 정부 8년 적폐 청문회’를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가 대상 중의 하나다. 청문회가 열리면 박 대통령의 ‘7시간’도 문제삼을 게 뻔하다.
 일본은 근래 20년 전후 지진으로 엄청난 재앙을 입었다. 2011년 3월 동일본 태평양 연안 지진으로 2만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다. 재산피해만 2050조원으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3분의 2에 해당된다. 이에 앞서 1995년 고베 지진은 7000명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그 때마다 일본은 슬퍼했어도 절망하지 않았다. 마치 기계처럼 복구의 삽을 들었을 뿐이다. 세계는 이런 일본의 극기에 감탄했다. 일본이, 일본 국민들이 무섭다. 그들의 국기(克己)와 절제는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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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말인지 2016-05-10 18:49:24
아베 수상은 지진발생당시 시부야의 사루가쿠쵸에서 회식도중이었고 소식을 듣고 24분만에 관저 위기관리센터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지진에 관한 메뉴얼을 지시합니다.
반면에 박대통령께서는 7시간의 행적에 대해서 사생활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는데 이게 단순히 인터넷 루머라고만 보이십니까

이게말인지 2016-05-10 18:45:24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아베는 지진발생 10분만에 지진대응 매뉴얼을 지시했고 관방장관은 40여분만에 tv에나와서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아베가 현장에 나타나지않았던건 지진은 전진 본진 이후에도 여진이 온다는 특수성때문이기도 하고 당장 찾아가서 피해복구를 지시할 수 없었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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