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그 여자의 쓰레기를 볼 수만 있었다면 남자는 그 여자의 숨은 성격에 대해서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여자는 까닭 없이 코발트색에 약하고, 입심이 좋고 단정한 옷차림의 남자에게 끌린다는 것을 알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성란의 동인문학상 수상 소설(1999년) ‘곰팡이꽃’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가 회사의 후배와 결혼한 것을 회상하면서 그 여자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자책을 뒤늦게 하고 있는 내면이다. 이 문장의 전후 맥락은 이렇다.
남자는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사용치 않고 일반 비닐봉투에 버렸다가 아파트 부녀회원들에게 추적당한다. 이 일을 계기로 남자는 90세대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매일 한 두어 개씩의 쓰레기봉투를 뒤지게 되는 버릇을 갖게 되고 결국 100개가 넘는 쓰레기봉투를 뒤적여 90가구 전체의 취향들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다. ‘이웃과의 소통’이 절실한 시대에 이런 식으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현실고발이 소설의 주제라는 등 몇 가지 해설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형사처럼 남의 쓰레기봉투를 뒤적여 정보를 얻는다는 그 발상이 재미있다.
수원 영통구가 쓰레기봉투에다 주소와 아파트 동호수를 적도록 하는 쓰레기봉투실명제를 도입하려 하자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크다며 온라인에서 난리가 났다. 네티즌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거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개설된 ‘쓰레기봉투 실명제 반대’ 서명운동엔 4000명이 넘는 누리꾼이 참여했다고 한다. ‘쓰레기실명제’ 실시 이유야 잘 안 되고 있는 분리수거의 정착이라지만 사생활 침해 가능성 논란이 크다면 아마 다시 생각해야 할 거다. 테러나 금융사기 같은 중대범죄 수사나, 국가안보에 관계되는 일도 종종 ‘사생활 보호’에 막히는 우리사회, 이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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