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장인 MBC 최삼규 PD 저술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육식 동물들은 쓸데없이 사냥을 하거나 자기 힘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최소한의 배고픔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사냥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거나 투기를 일삼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우리네 모습은 어떠한가?”(‘작가의 말’ 중)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등 야생 동물의 일상생활 속에 숨겨진 따뜻한 감동 스토리를 포착해 시청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킨 자연 다큐멘터리의 장인 MBC 최삼규 PD.
그런 그가 꾸준하게 천착해온 자연 다큐멘터리 작업의 연장선이자 최종 완결판이라 할 만한 책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을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자신이 오랜 시간 지켜본 리얼 동물의 왕국은 피비린내 풍기는 경쟁과 승자독식의 세계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단지 진화론적, 생물학적인 용어일 뿐 자연의 진정한 섭리는 아니라는 것.
그가 본 자연은 어떤 동물의 ‘갑질’도, 그 누구의 잉여와 축적도 허락하지 않는 세계다. 그러므로 치타나 사자 같은 육식동물이 야생의 지배자라는 생각은 크나큰 오산일 수 있다. 누구나 공평하게 자신의 삶을 살다 갈 수 있도록 아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는 세계, ‘조화와 공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야생의 본모습이라는 것이다.
“그 순간 가젤 새끼가 치타를 발견하고는 휙 하고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뛴다!” 가젤을 따라 뛰는 치타를 보고 카메라맨이 긴급하게 외쳤다. 그 말과 동시에 이미 치타 어미는 상당한 거리를 전속력으로 뛰어 앞선 가젤 새끼를 거의 잡기 일보 직전까지 가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가젤을 코앞에 두고선 갑자기 치타가 추격을 중단하고 풀밭에 누어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다. “어? 뭐야? 치타가 갑자기 사냥을 포기했어!” 왜 다잡은 가젤을 앞에 두고 치타는 사냥을 그만두었을까? 촬영 팀은 그 순간을 카메라에 못 담은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108쪽)
그는 육식동물들도 번번이 사냥에 실패하며, 때로는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 사자 새끼마저 굶어 죽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그는 치타나, 사자가 사냥에 성공하면 몇 날 며칠이고 계속 잠을 자는 통에 제대로 된 사냥 장면을 찍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동물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 승자도 패자도 아니라는 것.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닌, ‘조화와 공존’의 메커니즘임을 이야기한다. 아프리카 야생 동물들의 결정적 한 방을 찍기 위해 때론 좌충우돌하고 때론 악전고투하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은 결국 인간이란 자연 앞에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은 ‘하늘을 이불 삼아 땅을 배게 삼아’ 세계 방방곡곡을 누볐던 그가 들려주는 살아있는 생태 이야기임과 동시에 자연 생태에 대한 낮은 눈높이의 관찰기이며 오지의 부족들에 대한 생생한 인류학적 리포트이기도 하다.
책의 말미에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사는 문명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전통의 삶을 사는 인간도 없듯이, 전통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동물도 없어진다면, 그때는 지구의 미래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긴 여행을 마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의 본질인 ‘조화로움’이 우리 인간에게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기도한다.”
이 책 속 등장하는 수천 수만 종의 동식물들은, 어쩌면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경쟁’ 대신 ‘조화’를 택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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