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 스웨덴 ‘말뫼의 눈물’ 기억하라
  • 한동윤
‘울산 ’, 스웨덴 ‘말뫼의 눈물’ 기억하라
  • 한동윤
  • 승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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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울산 현대중공업 육상건조시설 한복판에 골리앗 크레인이 서있다. 별칭이 ‘코쿰스 크레인’이다. 높이만 138m다. 현대중공업이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으며 내놓은 크레인을 사온 것이다. 그 크레인 비용이 단돈 ‘1달러’였다. 2002년 9월 25일 말뫼 주민들은 크레인의 마지막 부분이 해체되어 운송선에 실려 바다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스웨덴 국영방송은 그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면서 ‘말뫼의 눈물’이라고 했다.
 말뫼에서 근무했던 헨리크 맛손씨(67)는 “정말 슬픈 날이었습니다. 바다 건너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도 보였던 조선소 크레인이 한국으로 팔려 간 날이었죠. 내가 일했고 내 아들과 손자까지 일할 곳이라고 믿었는데…. ‘말뫼의 영혼’이 팔려 간 듯 했습니다”고 회고했다. ‘말뫼의 눈물’. 바로 그 크레인이 울산에서 붉은색 페인트칠로 다시 태어나 한국의 조선업을 세계 1위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조선산업이 위기에 맞닥뜨렸다. 한국의 해양 조선 산업을 견인했던 한진·대우· 현대 조선 빅3사가 파산 위기에 몰린 것이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선박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현대중공업 수주량 역시 미미하다.
 거제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노조는 6월부터 2만500여명이 실직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울산 현대중공업 역시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최대 3000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거제에서는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대우조선-삼성중공업 양대 조선소 협력사 45곳이 폐업했고, 울산에서는 20여개의 협력사가 문을 닫았다. 이들 업종이 집결된 부산과 울산, 경남 등 동남권 경제벨트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말뫼의 눈물’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상황이다.
 스웨덴 말뫼의 코쿰스 조선소도 1986년 문을 닫기 전까지 10년이 넘도록 수조 원의 엄청난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한국과의 경쟁에 패하면서 경쟁력을 상실했고, 세계 최대 크레인을 ‘1달러’에 팔아야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말뫼 조선소 노동자들도 조선소 폐쇄를 반대하는 극렬한 시위를 벌였다.

 말뫼는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은 뒤 실업률이 22%까지 치솟았다. 1990~95년 조선소에서 해고당한 실업자는 모두 2만8000여명. 거리는 실업자로 넘쳐났고 범죄가 들끓었다. 그런데도 ‘코쿰스 크레인’을 팔지 말아야한다는 주장이 득세했다. ‘역사박물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94년부터 2013년까지 19년 동안 말뫼 시장을 지낸 일마르 레팔루 전 시장(72)은 “가슴 아팠지만 내가 직접 매각을 결정했다”며 “쓰지 않는 크레인 보존 비용만 연 500만 크로나(약 7억1700만 원)가 들어가는 데다 ‘뉴 말뫼’에 적합한 심벌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치욕과 절망의 ‘말뫼’가 극적으로 변했다. 중앙일보는 중국 조선의 공세에 ‘말뫼’ 신세가 된 한국 조선산업의 돌파구를 말뫼에서 찾기 위해 말뫼를 답사한 기사를 실었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바다 위 외레순 대교를 건너 30분 만에 도착한 말뫼는 조선소가 있던 도시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하고 밝은 분위기를 풍겼다. 크레인이 놓여 있던 선박 건조장은 호화 요트가 정박해 있는 마리나로 변했다. 옛 조선소 터에는 의학, 바이오, 정보기술(IT) 분야 첨단기술 기업들의 유럽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
 말뫼시민는 조선소가 문을 닫자 기업인, 노조, 주지사, 시장, 교수 등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10~20년 뒤에도 살아남을 장기산업에 대해 ‘끝장 토론’을 벌인 끝에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손떼고 신재생에너지, IT, 바이오 같은 첨단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로 결론을 냈다. 그 결과가 조선소 터에 청정 에너지로 운영되는 친환경 뉴타운을 개발했다. ‘말뫼의 눈물’이 ‘말뫼의 웃음’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말뫼 조선소 파산 이후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에 절대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다 죽어가는 기업의 생명을 잠시 연장할 수는 있어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뫼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말뫼의 눈물과 웃음’은 우리에게도 귀중한 교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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