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한길로 인간 본질·폭력성 끝없이 파고들다
  • 이경관기자
오롯이 한길로 인간 본질·폭력성 끝없이 파고들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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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수상 ‘한강’ 작품세계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다양한 작품에서 인간의 본질과 폭력성을 탐구하고 강렬한 문제의식을 아름다운 문장과 긴밀한 서사로 극한까지 밀어붙인 한강은 1993년 시인으로 먼저 등단,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의 길에 들어섰다.
 이번 수상은 20년이 넘도록 오롯이 한 길을 달려온 그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선정된 ‘채식주의자’부터 5월 광주의 이야기를 담은 ‘소년이 온다’, 그녀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까지 그녀의 작품을 살펴본다.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욕망에 대한 거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43쪽)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는 표제작인 ‘채식주의자’부터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과 ‘나무 불꽃’으로 구성됐다.
 죽어가는 개에 대한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점점 육식을 멀리하고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영혜를 주인공으로 각 편에서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첫번째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는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남편, 두번째 소설 ‘몽고반점’에서는 처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을 탐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진작가, 영혜의 형부, 세번째 소설 ‘나무 불꽃’에서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목격했으나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혜가 화자로 등장한다.
 잔잔한 목소리지만 숨 막힐 듯한 흡인력이 돋보이는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는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과 식물적인 상상력을 결합시켜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미적 경지를 보여준다.
 욕망, 식물성, 죽음, 존재론 등의 문제를 한데 집약시켜놓은 이 작품은 2016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선정되며 한국 문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광주민주화운동… 남겨진 사람들 이야기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쪽)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로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통해 저자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고통 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던 그는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날, 돌아오라는 엄마와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동호는 도청에 남는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돼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여기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
 한강은 열다섯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기억들을 함께 나눈다.
 
 

30대·40대… 지금을 살아가는 삶의 궤적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19쪽, 마크 로스코와 나2 부분)
 한강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흔들리는 20대를 거쳐, 30대를 지나 40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까지 그녀의 삶의 궤적을 느낄 수 있는 60여편의 작품들로 이뤄져 있다.
 한강의 시는 화자들의 독백인 듯, 비명소리를 드러내고 영혼의 부서짐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시집을 아우르고 있는 상실과 슬픔의 정조는 늦은 밤과 새벽을 배경으로 더욱 짙고 깊게 나타난다. 그녀의 시는 소설 속 인물들의 독백과 같았다. 고통에 짓눌린 인물들의 포효는 절규를 넘어 영혼의 부서짐으로까지 전이됐다.
 그러나 한강은 깊은 상실의 슬픔을 스스로 담금질해 회복하고자 했다. 그녀는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지만 극복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슬픔, 그 자체에 녹아들었다. 그녀가 선택한 침묵 속의 회복은 더뎠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녀의 시 속에는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고 한강은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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